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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달리의 삶을 서커스로 만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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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7일 국내 초연되는 컨템포러리 서커스 ‘라 베리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로드 달리의 예술을 소재로 한 기괴하고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사진 LG아트센터]

27일 국내 초연되는 컨템포러리 서커스 ‘라 베리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로드 달리의 예술을 소재로 한 기괴하고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사진 LG아트센터]

서커스는 이제 더 이상 곡예의 동의어가 아니다. 순수 문화예술이자 종합 공연 장르다. 우리가 기억하는 추억의 서커스가 신기한 볼거리를 나열하는 쇼 엔터테인먼트라면, 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요즘의 서커스는 서사구조를 갖춘 일종의 드라마다. 추억의 서커스와 구분 짓기 위해 ‘아트 서커스’라 따로 부르지만, 불행히도 아트 서커스는 ‘콩글리시’다. 전 세계 어디에도 아트 서커스라는 장르는 없다. 1984년 캐나다에서 창단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이후 엄연한 공연 장르로 자리매김한 서커스를 굳이 명명한다면 ‘컨템포러리(Contemporary·현대적인) 서커스’라 이를 수 있다. 완연한 봄날, 의미 있는 서커스 공연이 잇달아 열린다.

27~30일 LG아트센터서 공연 #15mX9m 그림 ‘광란의 트리스탄’ #배경막으로 쓴 ‘라 베리타’ 한국에 #의정부·안산서 열리는 축제에도 #호주·이탈리아·벨기에 극단들 공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는 1940년대 초반 2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안무가 레오니드 마신(1896∼1979)을 만난다. 마신은 달리에게 발레 ‘광란의 트리스탄’의 배경막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달리는 높이 9m 넓이 15m의 대작을 완성해 194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작품은 사라진다.

‘라 베리타’의 소재인 달리의 ‘광란의 트리스탄’.

‘라 베리타’의 소재인 달리의 ‘광란의 트리스탄’.

2009년 ‘광란의 트리스탄’은 극장 창고에서 발견된다. 경매로 작품을 획득한 수집가는 작품이 원래 목적대로 공연 배경으로 쓰여야 한다며 연출가에게 의뢰한다. 그 연출가가 스위스 출신 서커스 연출가 다니엘 핀지 파스카(53)이고, 핀지 파스카가 ‘광란의 트리스탄’을 배경막으로 쓴 작품이 컨템포러리 서커스 ‘라 베리타’다. 2013년 무대에 오른 이후 전 세계 20개국에서 30만 명이 관람한 히트작 ‘라 베리타’가 27~30일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된다.

흥미로운 사연이 전해오지만 ‘라 베리타’도 서커스다. 배우들이 곡예를 하고, 저글링을 하고, 줄에 매달려 허공을 맴돈다. 여느 연극처럼 줄거리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대신 배우들의 동작에서 일정한 흐름은 읽힌다. 25일 국내 언론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핀지 파스카는 “달리의 인생을 서커스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달리가 살던 집을 찾아가 달리의 흔적을 찾았다. 그 흔적을 모아 모자이크 형식으로 달리의 삶을 표현했다. 달리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악몽처럼 그려냈는데 공연에서는 가볍고 아름답게 풀어냈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작품은 기괴하고 섬뜩하다. 그 해괴한 작품에 밴 달리의 내면을 유쾌한 서커스로 재현했다는 연출가의 말이 쉬 와닿지 않는다. 다만 추측할 수는 있다. 연기는 물론이고 의상·조명 등 연극적 장치도 결코 범상치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4분 분량의 자료 영상에서 확인한 바도 같았다.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배우가 치마를 입은 발레리나로 등장했고, 사다리 곡예를 하는 배우들은 코뿔소 가면을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명이 강렬했다. 조명에 따라 무대는 환하거나 깜깜하거나 빨갛거나 파랬다. 현실세계로 보이지 않았다. 달리의 그림 속, 아니 머릿속 풍경 같았다.

다니엘 핀지는 세계적인 공연 연출가다. 영국국립오페라단, 러시아 마린스키극장과 오페라를 만들기도 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폐막식,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폐막식도 그의 작품이다. 태양의 서커스 하고는 두 차례 호흡을 맞췄다.

봄 축제를 화려하게 빛내는 서커스 공연

호주 서커스단 ‘서카’의 작품 ‘동물의 사육제’.

호주 서커스단 ‘서카’의 작품 ‘동물의 사육제’.

봄마다 열리는 예술축제에서도 서커스는 주연 노릇을 한다. 다음달 12~21일 개최되는 의정부음악극축제의 폐막작이 서커스다. 호주 서커스단 ‘서카’의 ‘동물의 사육제’가 다음달 20, 21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 오른다.

다음달 5~7일 열리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는 서커스 공연을 5편이나 관람할 수 있다. 축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이탈리아 서커스단 ‘노그래비티포몽스’의 ‘길 위에서’는 고난도의 줄타기 곡예를 보여주고, 벨기에 극단 ‘살아있는 서커스’의 ‘우리끼리’는 장대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한국 작품도 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서커스 전문가 양성 과정을 통해 탄생한 서커스 창작집단 ‘봉앤줄’의 ‘나, 봉앤줄’이다. 줄타기 곡예와 장대 묘기를 결합한 공연을 선보인다. ‘봉앤줄’의 공연은 오는 28~29일 서울 광장동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싹 브리핑’ 무대에도 오른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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