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판을 잘게 부수며 서서히 조여오는 李9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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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2국
[제6보 (92~113)]
白.도전자 曺薰鉉 9단 | 黑.왕위 李昌鎬 9단

한여름의 낮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다. 부안군 줄포가 고향인 최규병9단이 지역 팬들을 상대로 다면기를 두고 있고 부지런한 김성룡7단은 인터넷 해설 중간 중간에 공개해설을 하고 온다.

저쪽 새만금이 있는 바닷가 쪽은 아스라이 보이지 않고 대국장을 에워싼 경찰들은 한없는 기다림에 지친듯 햇빛을 피해 그늘에 앉아있다.

느릿하게 흘러가던 바둑판 위에서 흑▲ 한점이 조약돌처럼 반짝이고 있다. 이창호9단이 돌연 강습의 느낌을 주는 한 수를 던진 것이다. 가벼운 긴장감이 파문처럼 퍼져나가더니 우르르 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싸움은 아주 간단히 끝나버렸다. 흑이 101로 한점을 잡고 백도 104로 두점을 잡아 뚝딱 타협을 본 것이다.

"흑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하며 김성룡7단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점을 잡은 데 비해 두점을 잃은 손실이 커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 金7단은 미세한 대로 흑의 우세는 변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105는 좋은 응수타진. 이 수에 백이 '참고도'처럼 쉽게 응수하는 것은 흑 2, 4를 선수당해 다시는 이길 수 없는 바둑이 된다.

'참고도' 흑 4의 곳을 당하는 순간 흑집은 두집이 늘어나고 백집은 한집이 준다. 선수 석집. 불과 석집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은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기울어가는 백의 형세에서 석집을 그냥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

曺9단의 106은 이런 정황 아래 던져진 혼신의 반발이고 107은 쉽게 생각하기 힘든 사석전법이었다. 李9단은 한점을 키워 죽이면서 109, 111을 얻어낸다. 그는 판을 잘게 부수며 서서히 판을 조여오고 있다.

112는 반상 최대의 곳. 이곳을 차지해 백도 항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李9단은 113으로 밀어 다시 어려운 시험문제를 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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