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선원 시신 3구 8개월째 한국 안치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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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선원 3명의 시신이 안치된 전남 목포의 장례식장 냉동고. 목포=김호 기자

중국인 선원 3명의 시신이안치된 전남 목포의 장례식장 냉동고. 목포=김호 기자

전남 목포의 한 장례식장에는 중국인 시신 3구가 장기간 안치돼 있다. 8개월째 누구도 이들 시신을 찾으러 오지 않아서다. 그 사이 냉동고에 든 시신 안치 비용은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다. 앞으로도 언제 장례 절차를 밟을지 불투명하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그동안의 안치 비용 전액을 받지 않아도 되니 영업에 지장을 주는 시신을 하루라도 빨리 유가족이 인수해가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선원 유족, 1인당 6억5000만원 보상금 해경에 요구 #해경, "정당한 단속 과정에 일어난 사고일뿐 보상 불가" #가매장 등 검토 중이지만 사드 여파 속 외교 문제 비화 우려

중국인 시신 3구가 기약 없이 한국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는 사연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경은 지난해 9월 29일 신안군 홍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 조업 혐의가 있는 중국 어선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어선이 도주를 시도하자 섬광폭음탄을 던졌다. 이후 어선에 불이 났다. 화재 진압 후 선내에서 중국인 선원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선장은 다른 선박의 어업허가증을 소지한 채 조업한 데다 해경이 정선 명령을 내리자 고속 단정에 돌진하는 등 위협해 대원을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경은 사망한 선원 3명을 장례식장에 안치한 뒤 부검을 비롯한 수사 절차가 모두 끝난 지난해 11월 초 중국 측에 시신을 인수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유족은 거부했다. 주광주 중국총영사관을 통해 사망자 1인당 400만 위안(약 6억5000만원)의 보상금을 먼저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유족은 "한국 해경의 단속 과정에 인명 피해가 났다"며 가족 위로금·생계비, 자녀 양육비 등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시신 안치 비용도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경은 유족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경과 외교부는 단속 당시 관련 규정에 따른 정당한 공무집행이 이뤄졌으니 보상 책임이 없다고 유족 측에 설명했다. 한국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 혐의가 있어서 정선 명령을 내렸는데 중국 어선 측이 이를 따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섬광폭음탄을 투척했으며 애초에 단속에 응했으면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2016년 9월 29일 전남 신안군 홍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중 섬광폭음탄을 맞은 중국 어선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 목포해양경비안전서]

2016년 9월 29일 전남 신안군 홍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중 섬광폭음탄을 맞은 중국 어선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 목포해양경비안전서]

해경은 중국 측에 “조속히 시신을 인수하라”는 요구만 반복할 뿐 뚜렷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용 문제를 고려해 화장 등 절차를 진행할 경우 자칫 한국과 중국간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서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라 경색된 한중 관계를 더욱 악화되게 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해경 수사 기간인 지난해 11월 초까지 발생한 시신 안치비 등 1026만원은 해경이 부담했으며,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비용 약 3500만원은 유족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중국 측에 통보했다.

해경은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매년 성어기 중국 어선들이 끊임없이 한국 내 EEZ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데 이번에 보상을 해주면 비슷한 사례가 나올 때마다 보상 요구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다. 또 향후 대원들이 현장에서 적극적인 단속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점, 중국 측이 과거 중국 선원의 불법 행위로 순직한 한국 해경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해경은 중국 측이 계속 시신 인수를 거부할 경우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및 관련 매뉴얼 등 국내 법과 기준에 따라 시신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신 한 구에 7만원씩, 하루에 21만원의 안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신안군에 무연고 시신으로 간주해 행정처리를 의뢰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임시로 시신을 매장했다가 유족에게 인계하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국 측의 반발을 우려해 정확한 시기를 정하지 못했다.

해경 관계자는 “주광주 중국총영사관 측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신 인수인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적 배려 차원에서 (가매장을 하지 않아) 시신 인계가 다소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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