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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서 미래 꿈꾸는 청년, 외로워 찾아온 중년 … 렌즈에 담은 5㎡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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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약 1.5평) 안팎의 직사각형 방 안에 덩그렇게 놓인 침대, 짐 몇 개를 둘 수 있는 공간과 책상.

내달 ‘고시텔’ 전시 여는 심규동 작가 #서로 방문 열고 술 한잔 나누는 일상 #고시원 살며 친해진 형님들이 모델 #전시비 600만원 소셜펀딩으로 모아

무명의 사진작가 심규동(29·사진)씨를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만들어준 이 공간은 고시원이다. 대학에서 사진을 배우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전시회 한 번 연 적 없지만 그는 다음달 8일부터 닷새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시텔’이란 이름으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비용 600여만원을 온라인상의 불특정 사람들이 모아주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두 충당했다.

‘고시텔’이란 전시회 이름처럼 그는 고시원과 그곳에서 사는 이들을 모델로 삼았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전국엔 1만1784곳(2015년 기준)의 고시원이 있다. 보증금이 거의 없고 월세가 싸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집’이다. 공간의 크기나 비품은 균일화돼 있지만 심씨의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서울 신림동 S고시텔에 사는 한 남성이 5㎡(약 1.5평) 안팎의 방에서 침대를 책상 삼아 노트에 글을 쓰고 있다. [사진 심규동씨]

서울 신림동 S고시텔에 사는 한 남성이 5㎡(약 1.5평) 안팎의 방에서 침대를 책상 삼아 노트에 글을 쓰고 있다. [사진 심규동씨]

누군가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30여 권의 책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온몸에 화려한 문신을 새긴 채 누워 얼굴을 오이로 마사지했다. 19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름을 빼내야 하는 이도 고시원에 산다. 이런 군상들을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의 공감 속에 회자되면서 전시비용은 어렵지 않게 모금됐다.

심씨는 “고시원이 ‘고시(考試)’를 준비하는 곳이 아닌 지는 오래됐다”며 “일부 젊은이는 이곳에 잠시 몸을 뉘인 채 ‘더 나은 꿈’을 꾸고, 또 다른 이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숨어든 공간이다”고 해석했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 그는 “열악한 공간이지만 결국 이 공간이 다양한 사람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달 8일부터 닷새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시텔’ 사진전을 여는 심규동씨가 고시텔 공용 주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사진. [사진 심규동씨]

다음달 8일부터 닷새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고시텔’ 사진전을 여는 심규동씨가 고시텔 공용 주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사진. [사진 심규동씨]

왜 고시원 사진을 찍으려 마음먹었나.
“나부터 고시원에 꽤 살았다. 기간을 다 합치면 4년쯤 된다. 옆방에는 10년째 고시원에 사는 아저씨, 멀쩡하게 취업한 회사원들이 함께 지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완전한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은 고시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심씨 사진의 배경이 된 S고시텔의 복도 모습. [사진 심규동씨]

심씨 사진의 배경이 된 S고시텔의 복도 모습. [사진 심규동씨]

사진 속 사람들은 어디서 만난 누구인가. 사진 찍히는 걸 달가워하던가.
“서울 신림동의 ‘S고시텔’에서 2015년 11월부터 10개월 동안 살았다. 그때 찍은 이웃들이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그곳에 살던 30여 명 대부분이 거절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를 포함해 7명이 전부다. 고시원에 사는 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잖나. 처음에는 복도랑 현관, 옥상만 찍다가 6개월쯤 지나면서 친해진 형님과 아저씨들에게 사진 모델을 부탁했다. 고시원 사람들은 혼자 지낸 기간이 길어 외로움도 잘 탄다. 중장년층 중에서는 원룸을 구할 돈이 있어도 외로워서 고시원에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 서로 방문을 열고 소주 한잔 나누는 게 일상이다.”
사진을 찍는 것과 공개적으로 전시회를 여는 건 별개의 문제 아닌가.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도 사진전을 여는 건 여기에 사는 우리도 한번은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숨길 모습도 아니고. 이를 통해 개선되는 점이 있다면 더 좋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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