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형사에게도 걸려오는 보이스피싱,"돈 인출 요구는 100%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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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햇살OO은행. 연 5.2% 금리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 가능. 조회 이력 없이 60일 무이자”
지난해 12월 대전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이런 문자를 받고 혹했다. 마침 연이자가 20%나 되는 카드장기대출을 이용 중이었는데 금리를 아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어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원은 “가상의 거래내역을 만들어 대출 조건을 맞춰야 한다”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안내해주는 통장으로 입금하라고 했다.

A씨는 상담원이 시키는 대로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알려준 계좌로 입금했지만 이후 상담원과 연락이 끊겼다. 알고 보니 그가 입금한 통장은 사기범들의 대포통장이었다. 햇살OO은행이란 곳은 존재하지 않는 회사였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감소 추세이지만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서민 피해는 여전하다.

사기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정부 지원을 받아 저금리로 바꿔주겠다며 체크카드를 요구하거나 제3의 계좌로 입금하는 식이다. ‘대출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정부 지원’, ‘저금리 대환대출’, ‘연체기록 삭제’, ‘신용등급 상향 조정’ 등의 광고 문자를 받았다면 모두 보이스피싱 사기로 의심해 볼만하다. 휴면계좌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이는 범행을 위한 대포통장으로 활용돼 계좌를 제공한 사람도 처벌될 수 있다.

수사기관을 사칭한 범죄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검사나 형사 등 보이스피싱 범죄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직군의 사람들에게도 수사 상황을 사칭하는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한다.
“금융정보가 유출돼 자금이 이체될 수 있으니 통장에 있는 돈을 알려준 계좌로 이체하라“는 식이다. 또는 돈을 인출해 냉장고 등에 보관하라고 겁을 준 뒤 집 밖으로 유인해 돈을 훔쳐가는 수법도 여전하다. 지난해 8월 B씨(77)는 이런 전화를 받고 통장에 있던 돈 500여만원을 찾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사기범들이 몽땅 훔쳐가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기관 직원이라고 말하는 자금 이체나 인출 요구는 100% 사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타깃으로 삼은 사기 수법도 판을 치고 있다.
“OO업체에 채용됐으니 월급을 받을 통장과 체크카드를 우편으로 보내고 알선수수료를 입금해달 라”는 거짓말이다. 여기에 속아 넘어간 구직자가 넘긴 통장과 체크카드는 다른 사기범죄에 활용된다. 주로 인지도가 낮은 취업 알선 사이트에 구인광고를 올려 구직자들을 현혹한다. 업체가 낸 구인광고를 일일이 모니터링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채용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회사의 공식 연락처를 알아내 사실 확인부터 해야 한다.

검찰은 계속되는 서민 피해를 막기 위해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법률이 정한 최고형을 구형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5일 김수남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확대간부회의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지시한 데 대한 후속조치다. (본지 4월 21일 보도)

2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각 지방검찰청에 보이스피싱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집중 단속한 결과 보이스피싱 사범 815명을 적발해 259명을 구속했다. 전년도보다 단속은 35.8%, 구속은 89.1% 늘어난 수치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에 접수된 피해 금액은 지난해 2463억원으로 집계됐다. 2014년 3568억, 2015년 3513억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 추세다. 신고·발생 건수도 2012년 2만8060건, 2013년 3만888건, 2014년 7만4659건, 2015년 6만4934건, 지난해 4만9132건 등이다.

검찰은 가담 정도에 따라 ▷범행주도자(수익분배자, 통장모집책 등) ▷중간가담자(콜센터 관리자 등) ▷단순가담자(콜센터 직원, 인출행위자, 통장양도자 등) 세 등급으로 나눴다.

범행주도자는 징역 10년, 중간·단순가담자는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5년을 기본 구형량으로 정했다. 여기에 양형요소를 살펴 가중하거나 감경한다. 특히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에 대해서는 피해 액수나 범행기간과 무관하게 법률이 허용하는 가중치까지 적용한 법정최고형을 구형하기로 했다. 대검 관계자는 “피해금 5억원 이상 상습 사기범은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관련 사범을 데이터베이스화(DB)해 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범죄에 사용된 계좌번호와 개설인, 전화번호 등을 토대로 숨겨진 범죄와 개별 범행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데 사용한다. 4월 현재까지 보이스피싱 사범 4만1831명의 DB가 구축됐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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