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비자금 수사] "權씨외 거물 또 있다" 소문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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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정치인들의 비리가 다음주에 추가로 나온다. "

15일 현대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주변에선 이런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수사팀은 이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실명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구속 수감됐지만 수사가 權씨에서 멈추지 않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검 중수부는 權씨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을 밝히지 않고 있는 만큼 權씨와 무관하게 현대 측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우선 소환 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다.

검찰은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등 전.현직 현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權씨와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외에 여야 정치인 5~6명이 현대 측에서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주부터 거물급 정치인이 포함된 이들을 본격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00년 당시 대북 사업 적자폭이 커지면서 어려움을 겪던 鄭회장 측이 금강산 카지노.면세점 설치에 명운을 걸고 전방위 로비를 했다고 보고 있다. 현대 측이 權씨와 朴씨 모두에게 거액을 건넸던 만큼 대북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적지 않은 돈을 줬으리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철저한 기초 조사를 마친 뒤 수사 대상자들을 소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權씨를 상대로도 현대 비자금의 행방을 계속 추궁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로 드러난 權씨의 2000년 4.13 총선 직전 자금 수수 규모는 현대 비자금 2백억원과 權씨가 스스로 "현대 측과 무관한 사람들에게서 받았다"고 밝힌 1백10억원 등이다.

검찰은 우선적으로 현대 비자금 2백억원의 흐름을 밝히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 돈이 순수한 총선 지원금으로 쓰였다면 정치자금법 공소시효(3년)가 지나 돈을 받은 정치인을 처벌할 수 없지만 현대 지원 요청과 함께 전달됐을 경우 알선수재나 뇌물수수로 처벌이 가능하다.

또 검찰은 2백억원 중 상당 부분을 權씨가 4.13 총선 이후에도 김영완씨에게 보관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돈이 2000년 8월 이후에 다른 정치인들에게 전달된 사실이 드러난다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權씨가 현대 비자금 수수 혐의를 벗기 위해 스스로 밝힌 "현대와 무관하게 1백10억원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權씨는 "돈을 준 사람이 탈세 조사 등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진술을 거부하고 있지만 검찰은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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