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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4월 위기설’이 ‘가짜 뉴스’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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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4월 위기설’은 설이 아니었다. 팩트였다. 우리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 인근에 항모들을 이동시키고 매일같이 대통령이 ‘모든 옵션’을 외치고 있다. 중국 지도자는 충돌을 뜯어말리고자 미국에 1시간 넘게 전화를 건다. 북한은 보란 듯이 미사일을 쏘아댔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는 한가하게 “위기설은 근거 없다”는 소리만 한다. 정말 그럴까. 외교부 주장대로 ‘4월 위기설=가짜 뉴스’가 맞다면 미 언론사들은 다 문을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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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지켜보는 미 언론들은 대북 군사행동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CNN·폭스뉴스에선 온종일 ‘북한’ ‘군사행동’이란 시뻘건 자막이 흐른다. 언론뿐 아니다. 의회도 “가만 놔둘 수 없다”가 대세가 됐다. 거물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북한 응징’을 주장한다. 정부는 어떤가. 13일 국무부 브리핑에선 ‘북한’이 58분 동안 26번 등장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많아야 1~2번이었다. 이제 돌이키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대북 군사행동론은 너무 많이 나가 버렸다. 온갖 ‘엄포성 발언’으로 트럼프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의 대북 정책은 ‘엄포→협상→엄포’의 반복이었다. 일종의 ‘타협의 원칙’이 작동됐다. 처음에는 힘으로 억누르려 하다 군사작전의 한계를 깨닫고 협상에 나섰다. 이 원칙에 준한다면 향후 예상은 이렇다.

1단계: 미국·중국의 제재와 군사압력으로 한반도 긴장 고조→2단계: 북한 핵 실험 혹은 미사일 실험→3단계: 미국 전술 핵무기 한반도 배치로 일촉즉발 전쟁위기→4단계: 전쟁을 피하기 위해 중국이 중재에 나서고 미국은 마지못해 협상에 의한 사태해결에 참여→5단계: 치열한 신경전 끝에 핵·미사일 동결에 북·미 합의.

최종 타협점이 ‘비핵화 전제가 느슨한 형태의 동결’이라면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칠 수 있는 타격 능력을 유지하고, 미국은 본토를 위협받지 않게 된다. 중국으로서도 딱히 나쁠 게 없다. 우리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 ‘허가된 상시 위협’ 속에 살아가야 한다. 과연 1~5대로 갈 것인가. 아니 가도 될 것인가. 우리가 지금 몇 단계에 서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군사행동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생텍쥐페리는 “전쟁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과 같다”고 했다. 요즘 분위기가 바로 그렇다. 2003년 ‘대량파괴무기 제거’ 여론을 키우다 결국 이라크에 대한 무작정 폭격으로 몰린 부시 때와 흐름이 흡사하다.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위협 현실화보다 수도권 2500만 명의 ‘인질’을 우선할 것이란 생각은 이제 고루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미국은 세계 3차대전, 핵전쟁을 불사하며 쿠바를 봉쇄했던 나라다. 정부는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견고하다”고 외치지만, 미국은 한국이 가장 어려웠을 때 남한을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시켜 북한의 남침 유혹을 키우게 했고(50년 1월 애치슨 선언), 상의 없이 주한미군 철수 결정(70년)을 했다. 한국은 안중에 없었다.

‘최악’을 상정해 나쁠 게 없다, 중국의 파격적 압박으로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 말이면 플루토늄탄을 장착한 탄도미사일 배치가 끝날 것을 아는 트럼프는 대북 군사행동 결단을 그리 오래 미루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 나선 5명의 후보에겐 이 위기를 헤쳐나갈 로드맵도, 위기의식도 보이질 않는다. “트럼프와 와튼스쿨 동문이라 통할 것”(안철수 후보)은 허무 코미디다(각료, 백악관 중간간부급 이상 통털어도 와튼스쿨 출신은 장녀 이방카를 빼면 0명일 정도로 트럼프가 와튼 동문을 챙기지 않는 걸 아시는지?). “일방적 군사행동을 못 하도록 하겠다”(후보 전원)는 답변도 초딩 수준이다. 어째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이런 저급 후보들을 보고 찍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신세 한탄할 시간도 없다. 정부는 위기가 아니라 하니 후보들이라도 공동 특사단을 미·중에 보내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