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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학부모총회가 열렸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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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박혜민코리아중앙데일리경제산업부장

박혜민코리아중앙데일리경제산업부장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학부모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간 내서 오신 학부모님들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인 제 아이들의 학부모총회에 참석하지 못했거든요.”

지난달 중순 어느 금요일 중학생 딸아이의 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부모총회. 학교 운영 계획을 설명하던 여교사는 학부모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여교사의 말에 동병상련의 심정이 됐다. ‘그래도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기까지 했다. 교사가 자녀 학부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한 수업에 빠지기는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 경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되도록 학부모총회에 참석하려고 애썼다. 1년 내내 담임 교사 얼굴 한 번 못 본 채 지내기 일쑤인 워킹맘 입장에서 학기 초에 개최되는 학부모총회는 중요한 행사다. 담임 교사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학교 방침은 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킹맘은 평일 근무시간 중에 열리는 총회에는 참석하기 쉽지 않다. 이날도 나는 중요 취재원과 점심을 먹다 말고 일어서야 했다. 총회가 끝난 후엔 다시 허겁지겁 사무실로 돌아갔다. 학부모총회 때문에 회사를 비운다고 하니 한 선배는 “그래도 금요일은 낫지. 내 아들 중학교는 목요일에 총회를 여는 바람에 교수인 아내가 목요일 오후 수업을 모두 휴강했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몇 년 전 미국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다. 큰아이가 그곳의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학교는 오후 7시에 학부모총회를 시작했다. 총회에는 학생들의 어머니뿐 아니라 일을 마치고 온 아버지들까지 참석해 학교를 둘러보고 교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도 있었다.

물론 미국의 경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학부모총회가 낮에 열리든 저녁에 열리든 모든 학부모가 참석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저녁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많은 부모가 참석할 수 있는 건 저녁 시간이 아닐까.

교육부는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일선 학교에 모든 학부모가 참석할 수 있도록 저녁 시간이나 공휴일에 학부모총회를 개최하는 것을 권장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변에서 야간이나 주말에 총회를 개최했다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보다 많은 학부모와 함께하는 학부모총회를 위해 가능하면 저녁 시간에 열면 어떨까 싶다. 공무원들처럼 1년에 이틀의 자녀돌봄 휴가가 보장되는 등의 가족친화적 기업 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필요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10여 년간 매년 학부모총회 때마다 일과 두 아이 사이에서 고민했던 워킹맘으로서의 바람이다.

박혜민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