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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외교문서]“中의 ‘북·소 밀착 우려’ 이용, 한·중관계 개선 추진” 암호명 ‘모란’ 구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86년 북한과 소련 간 관계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데 대해 중국이 경계심을 갖는 것을 활용, 미국이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 군사훈련 감축 협의와 군사·안보 분야의 남·북·미·중 4자회담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모란’ 구상이라는 암호명으로 추진됐다.

외교부, 86년 외교문서 23만여쪽 공개 #85년 키신저 방중 계기…美, 군사 훈련 감축도 검토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11일 공개한 외교문서 23만여쪽(1474권)에서 밝혀졌다. 정부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매해 심의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둔 86년 5월 한·미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 준비 자료를 작성했다. 2급 비밀로 분류된 당시 자료에 따르면 모란 구상의 핵심은 북·소 간 관계 긴밀화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외교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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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따르면 86년 1월7일 리처드 워커 주한 미 대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방중(85년 11월) 결과에 대해 한국 측에 알려왔다.  중국이 북·소 관계를 우려하며 “미국이 대북관계에 있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경우 중국도 대한국 문제에 있어 더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에 따라 두 개의 회담을 구상했다. ‘정치문제에 대한 남·북한 양자회담’과 ‘군사·안보 문제에 대한 남·북·미·중 4자회담’이었다. 미 측이 시사한 협의사항으로는 ‘남·북 대화에 대한 북한의 건설적 자세 유도’, ‘남·북 군사훈련 감축’, ‘군사 문제에 대한 남북 대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 미·중이 옵서버로 참여하는 문제 고려’가 있었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한·미 간 협의를 제안했다. 같은해 1월21일 1차 협의에서 미 측은 “북한의 군사활동 축소를 전제로 한 팀스피리트 훈련 변경 가능성을 검토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한국 측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는)88년까지는 현 규모의 팀스피리트 훈련 변경은 안 된다”고 반대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제안한 4자회담에 대해선 북한이 요구하는 ‘남·북·미 3자회담’의 변형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월20일 협의에서 한국 측은 비공식적으로 모란 구상에 대한 미 측의 의견을 타진했고, 긍정적 답변을 받는다. 이 때 정부가 밝힌 모란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이후 협의에서 “미 측이 사교행사에서 북한 관리가 접근해올 경우 대화를 허용하는 문제와 북한 학자의 미국 입국에 대한 전진적 자세를 고려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돼 있는 것으로 미뤄 미국이 북한에 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이를 한·중관계 개선에 활용하는 방안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협의 과정에서 한국은 미 측에 “‘북한산 계획’은 목표로서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도 천명했다고 돼 있다. ‘북한산 계획’은 중국이 남한을, 일본이 북한을 교차 승인하는 방안을 일본을 통해 추진하려 했던 암호명 ‘한강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한·중과 북·일 간에 무역 대표부를 설치하는 방안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84년부터 이를 추진했다.

해당 문서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 앞으로도 한·미 간에 협의를 계속해나가길 바란다”며 “이 건에 대해서는 이번 회담에서 논의된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대외적으로 보도되지 않도록 협조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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