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김진욱 감독, 그리고 kt의 힐링캠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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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kt 감독. [중앙포토] 

김진욱 kt 감독. [중앙포토]

지난 4일 kt 선수단은 수원 kt위즈파크에서 홈개막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더그아웃에서 기자들과 대화하던 김진욱(57) kt 감독이 "감독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선수 좀 불러봅시다. 정복아, 이리 와봐"라고 소리쳤다. 취재진이 모인 곳으로 감독이 부르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쭈뼛거린다. 감독 바로 옆에서 기자들과 편하게 얘기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오정복(30)은 씩씩하게 걸어왔다.

오정복은 직전 경기인 2일 인천 SK전에서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때렸다. 김 감독은 "왠지 정복이가 꼭 쳐줄 것 같았다. 그런 믿음이 있어서 대타로 내보냈다. 물론 못 해도 좋지만 그래도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뒤 자리를 비켜줬다. 오정복은 "감독님 마음을 알기에 항상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자신감이 더 커진다"며 웃었다.

kt는 이날 두산에 0-2로 졌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모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지난해 말 kt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는 날에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후 kt는 다시 승리를 이어갔다. 7일에는 대타 오정복이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날렸다. 8·9일에는 이틀 연속 완봉승을 거뒀다. 지난 2년 동안 최하위에 머물렀고, 올해도 최하위 후보인 kt가 정규시즌 1위(7승1패)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외국인이나 베테랑 선수 의존도가 크지 않다는 점이 현재 kt의 특징이다. 마무리 김재윤(27)을 비롯해 심재민(23)·조무근(26)·엄상백(21)·장시환(30) 등 젊은 불펜진이 탄탄하다. 정대현(26)·고영표(26)는 4·5선발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kt가 치른 8경기가 그들의 진짜 전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위기가 반드시 찾아올 거고, 시즌 내내 상위권에 있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겨울 kt의 전력 보강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건 kt가 변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3월 초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하면서 선수들에게 "우리 전력이 약한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러니 (결과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즐기고 또 배우자. 왠지 우리가 꼴찌는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막내팀 kt 선수층은 견고하지 못하다. 젊은 유망주들과 다른 팀에서 밀려난 베테랑들이 주축이다. 무엇보다 지난 2년간 105승3패180패에 그치면서 쌓인 패배의식이 문제였다. 저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저마다 상처 하나씩은 갖고 있는 선수들을 김 감독이 먼저 따뜻하게 안았다.

김 감독 부임 후 가장 달라진 건 단체훈련을 최소화한 것이다. 성적이 나쁘면 훈련시간이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김 감독은 반대의 길을 택했다. 또한 kt가 캠프에서 10차례 이상 평가전을 치르는 동안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선수들끼리 더 많이 대화하고, 선수와 코치가 격의 없이 소통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선수들이 지시를 받는 대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는 주체가 되도록 도운 것이다.

kt에서는 감독이 주도하는 미팅이 아예 없어졌다. 필요하다면 선수들끼리 소규모 미팅만 연다. 김 감독에게 할 말이 있을 땐 전화나 SNS를 하면 된다. 김 감독은 라인업 구성 등 대부분의 권한을 코치에게 맡긴다. 권한이 구성원들에게 분산돼 있고, 각자 긴밀히 소통한다. 상당히 안정화된 소통 시스템이 막내팀 kt에서 작동 중이다.

2012년 두산 지휘봉을 잡았던 김 감독은 2013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뒤 물러났다. 당시 그에게는 "좋은 지도자이지만 독한 승부사는 아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는 이후 해설위원으로 일하며 야구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볼 기회를 얻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야구가 감독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앞에서 이끄는 리더가 아닌 뒤에서 밀어주는 서포터가 되기로 했다. 그 지향점이 마침 kt와 맞닿았다.

kt 사령탑에 오르면서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말했다. 

"사고만 치지 말아라. 그러면 용서하지 않겠다. 대신 야구장에서는 마음대로 해라. 못해도 되고 실수해도 괜찮다." 

kt의 2017년은 김 감독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치유와 성장의 시간이 되고 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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