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심상정 후보의 '핀란드형 직업고'는 청년 일자리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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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5~29세 청년실업률이 9.8%를 기록해 2000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교육 양극화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부터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흥미로운 교육 공약을 내놨다. 바로 핀란드형 ‘선취업·후진학’ 직업계고등학교 확대다. 심 후보는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낡은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하는 교육혁명을 해야 하고 핵심은 직업고등학교를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후보는 “핀란드형 직업고를 대거 확충하겠다”며 “대학에 가지 않고서도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선취업 후진학’ 사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이스터고·특성화고·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고의 비중을 현 19%에서 OECD 평균인 47% 수준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녹색당은 다음 날 논평을 내고 “한국 사회에선 직업계 고교를 아무리 떠받들어도 그들이 졸업해서 잘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비판했다. 심 후보의 ‘핀란드형 직업고’ 공약의 실체와 실효성에 대해 짚어봤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중앙포토]

심상정 정의당 대표. [중앙포토]

◇ 핀란드 직업고는 ‘선취업 후진학’ 구조인가

주한 핀란드 대사관에 따르면 핀란드의 학제는 유치원, 종합학교(초등학교+중학교, 9년제), 고등학교(3년제)로 나뉜다. 이 중 고등학교는 일반고(Upper secondary school)와 직업고(Vocational school)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일반고든 직업고든 목적이 대학 진학이나 일자리 구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사관의 라우라 뉘케넨 서기관은 “고교의 목적은 ‘본인의 적성찾기’에 맞춰져 있다”며 “일반고과 직업고를 한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게 아니라 본인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일반고-직업고-대학-취업이라는 선택이 호환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일반고를 마치면 △대학 진학 △직업고 진학 △취업, 직업고를 마치면 △취업 △직업전문대학 진학 △일반대학 진학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즉, 핀란드 직업고에서 ‘선취업 후진학’은 하나의 옵션일 뿐이다. 실제 직업고를 나온다고 100% 취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사관 측에서 제공한 핀란드 최대 일간지 ‘헬싱긴 사노마트(Helsingin Sanomat)’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직업고를 나온 학생의 24%가 졸업 후 1년 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 핀란드에선 일반고보다 직업고를 더 선호하나

 실제 핀란드에는 대학 전에 취업을 경험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핀란드 오울루공대에 재학중인 펠톨라는 이메일 답변을 통해 “일반고를 나오든 직업고를 나오든 대학에 진학 할 수 있고 곧바로 취업할 수도 있다”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1~3년 정도는 먼저 일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한달에 학생 지원으로 300~500유로(약 36만~60만원)를 지급하고 정부보증대출도 월 300유로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직업고 비중이 심상정 후보가 제시한 47%에는 못 미친다. 핀란드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고와 직업고의 비율은 약 7대3, 또는 6대4 정도로 일반고가 우세하다.

◇ 직업고가 ‘좋은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한국에도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 고교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취업률은 2009년 16.7%에 불과했지만 2010년 25.9%, 지난해 47.2%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산업인력 양성 교육시책 추진실태’를 통해 이런 교육부의 통계가 부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고와 달리 소득이 없어도 재직증명서만 제출하면 취업자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실제 감사원이 2013년 특성화고 졸업자 4만6166명 가운데 재직증명서 제출만으로 취업을 인정받은 1만1731명을 상대로 근로소득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무려 40%인 4581명은 근로소득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취업률에 거품이 끼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취업=좋은 일자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상대적으로 대졸 신입 채용이 많은 대기업과 고졸 채용이 많은 중소기업 임금격차(고용부 ‘월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가 올 1월 331만4000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 한국에 도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핀란드형 직업고가 ‘본인의 적성찾기’측면에서 이상적이라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문제는 한국의 △대학 진학 선호 분위기 △단순 기능인력 위주의 직업고 교육과정 △고졸과 대졸간 임금 격차 등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도가 왜곡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핀란드,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아 직업고만 나와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무리없이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기준 OECD가 밝힌 회원국 평균 대학진학률은 41%다. 한국은 68%로 과거보다는 많이 떨어졌지만 핀란드(40%)에 비해 여전히 ‘대졸 지향도’가 월등히 높다. 송 교수는 “과연 부모들이 직업고 진학을 원할지, 직업고를 47%까지 늘리면 그 정원을 채울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며 “자칫 특례 입학을 노리고 직업계에 들어가 대입 공부만 하고 정말 원해서 입학한 학생들까지 분위기를 깨는 과거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커리큘럼도 문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장(교육학과 교수)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가면서 업계는 점점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여전히 직업고 과정은 단순 기능교육에 머물러 있다”며 “이대로라면 직업고 졸업자들이 일자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업고의 질적인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 산업계의 변화 없이 단순히 직업고 숫자만 늘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결국 심상정 후보의 핀란드형 직업고 확대는 그 목적은 바람직하지만 핀란드와 한국 사회의 차이를 무시하고 도입할 경우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직업고가 무조건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 직업고 취업이 곧 좋은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 핀란드의 직업고가 단순히 ‘이른 나이에 취업하기 위해’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 전반적인 개혁과 함께 도입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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