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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길도 발밑에서’ 글씨 선물 … 미국과 무역 전면전 피한 시진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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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 팜비치 마라라고에서 함께 산책하고 있다. [팜비치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 팜비치 마라라고에서 함께 산책하고 있다. [팜비치 AP=뉴시스]

“구 층 누각도 흙더미로 짓고, 천 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한다(九層之臺起於累土 千里之行始於足下).”

베이징의 시각 #합의보다는 기본방향 설정 중점 #미 반중 정서, 일단 누그러뜨려 #연내 트럼프 방중 약속 받아내 #중국 내 “회담 목표 달성” 평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6일 저녁(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 노자의 도덕경 구절을 쓴 서예 작품을 선물로 건넸다. 회담에 임하는 그의 전략, 목표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구체적인 현안 합의보다는 트럼프-시진핑 시대를 맞은 중·미 관계의 기본 방향 설정에 중점을 뒀다. 미국과의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막는 게 당면 과제였다. 회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고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립·경쟁보다 협력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설정, 시 주석의 외교 성과를 부각시킴으로써 올가을 당대회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게 중국의 회담 전략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이번 회담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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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은 우호적으로 진행됐고 트럼프는 올해 안 중국 국빈 방문을 수락했다. “상호 이익을 위한 협력의 확대와 상호 존중의 기초 위에서 이견을 적절히 관리해 나간다”는 양국 관계의 기본 방향은 중국 외교부와 백악관의 공식 발표에 나란히 담겼다.

▶외교안보 ▶전면적 경제대화 ▶법 집행 및 사이버 안전 ▶사회·인문 교류 등의 고위층 대화기제 출범에 합의한 것은 보다 구체적인 성과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종전의 전략경제대화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를 4개의 고위급 대화기제로 재편한 건 큰 성과”라고 말했다. 중국은 양국 공동성명이 없었던 것이나 시리아 공격이란 돌발 변수에 묻혀 회담이 덜 주목받게 된 것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첫술에 배부르랴”는 식이다. 중국의 만족감은 줄곧 미소를 잃지 않았던 시 주석의 표정에서 드러난다. 2015년 국빈 방문 당시 공동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양국 간 전면적 경제대화를 통해 미국의 대중적자 완화를 위한 ‘100일 계획’을 수립하기로 한 것은 무역전쟁을 원치 않는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양보한 결과다. 연초부터 시진핑은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했지만 회담 발표문에 보호무역 비판은 한 줄도 없었다.

중국은 만찬 회담 도중 시작된 미국의 시리아 공격에 대해서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에는 트펌프가 ‘홍문연(鴻門宴)’을 펼쳤다는 비유도 나왔다. 초나라 항우가 모사 범증의 계략대로 홍문에서 연회를 열고 칼춤을 추며 유방을 해치려 한 고사에 빗댄 것이다. 고사 속 유방은 이를 눈치채고 위기를 모면했다.

시 주석이 “이해한다”는 뜻을 보였다는 미국 측의 설명으로 볼 때 시 주석은 미국의 독자적 행동에 대해 강한 반론을 제시하진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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