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마스터스 관람 문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6호 면

Outlook

해마다 4월 첫 주간(first full week)에는 마스터스 골프대회가 열린다. 네 개의 메이저 대회 중에 역사는 가장 짧지만 인기는 최고인 것 같다. 마스터스대회의 TV 중계화면은 완벽하게 아름답고 서정적인 주제음악도 인상적이다. 미국에서 골프심리를 공부하던 중이던 2006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마스터스에 구경 갔다.

골프대회도 각본 없는 연극무대 #완벽한 무대 위해 관중도 최고여야 #지켜야할 것 어기면 퇴장이지만 #존중하고 대우 받는다는 느낌 #3만~5만 명 몰려들어도 질서정연

대회 창립자이자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는 1930년 오거스타에 있는 천혜의 땅을 사들여 골프클럽을 만들고 골프대회를 열었다. 1850년대 남색 염료재료인 쪽(indigo)농장에서 수목원으로, 다시 세계 최고의 골프 낙원이 되었다. 인디고 블루에서 마스터스 그린이 되었으니 녹출어람(綠出於藍)이라고 억지 말을 해도 되겠다.

처음 대회를 열 때 공동 창업자 클리포드 로버츠는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주장했으나 존스는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오거스타 인비테이셔날로 결정했지만 나중에 자신을 얻어 마스터스로 바꾸었다. 일찍이 존스는 골프대회도 연극무대처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토너먼트 골프는 영웅적이거나 비극적일 수 있다. 어떤 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선수와 관중이 그 극적인 경험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마력을 가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연극의 각본·배우·관객을 경기·선수·관중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딱 맞아 떨어진다. 미리 정해진 각본이 없으니 더 극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 마지막 홀에서 네 번의 커튼 콜이 있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클러치 펏 때문이다. 이 멋진 퍼포먼스를 공감할 수 있는 관중이 현장에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거스타 내셔널은 관중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골프대회의 갤러리와 달리 ‘페이트런’이라고 고집한다. 그 단어 뜻대로 관중을 대회를 ‘지지하는 고객’으로 생각하여 철저하게 관리한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페이트런에게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다. 입장할 때 공항보다 엄격하게 이중으로 검색해 불쾌할 정도다. 다섯 장으로 된 ‘지켜야 할 사항들’과 ‘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Do’s and Don’ts)’을 페이트런에게 나누어 주고 이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지키지 않으면 퇴장시키거나 입장권 구매자격을 영구히 박탈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휴대전화는 연습일에도 허용되지 않고 가방의 크기는 얼마 이하이어야 한다, 팔걸이가 없는 접이식 의자는 가능하다 등등 아주 꼼꼼하게 적혀 있다. 심지어
'뛰는 것은 마음에 안 드는(unacceptable) 행동'으로 간주한다는 내용까지.

이는 일부 관중의 돌출행동으로 퍼포먼스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연극의 연기자 역할을 하는 선수가 뛰어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또 관람하는 관객이 방해받지 않고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엄격함과 더불어 관중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대우한다는 것을 오거스타에 갔을 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존스는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페이트런이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구경할 수 있게 하고, 관람하기 좋은 위치 몇 군데를 추천했다. 이는 '관람자 안내'에 지금까지도 실려 있다. 코스 안에서 맛있는 샌드위치를 값싸게 파는 것도 페이트런에 대한 조그만 애정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1966년 연장전에서 미국 CBS방송 캐스터가 흥분한 페이트런을 'mob(난동꾼)'이라고 표현했다.
'자비로운 독재자' 로버츠는 페이트런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쓴 캐스터를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했다.

“골프에서 예절과 품행의 관습은 경기 규칙처럼 중요하다. 관중이 스트로크의 난이도에 비례해서 박수를 치는 것은 적절하지만, 해당 선수나 그 지지자들이 이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존스가 남긴 에티켓 등에 관한 글의 앞부분이다. 당시 맞수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러스 경기 중 파머의 열렬한 팬들이 실수한 니클러스에게 환호하는 박수를 치는 일이 벌어져 다음해 이를 명문화했다고 한다. 매일 3만 명에서 5만 명에 이르는 관중들로 넘쳐도 소란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하다. 페이트런들이 경기 중인 선수들에게 가까이 있어도 그들의 시각과 청각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오거스타 내셔날이 만든 마스터스의 대회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완벽한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최고의 선수들을 초청해 가장 아름답고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일류 코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관중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마스터스 등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골프대회의 관람 태도가 개선되고 있다. 관람 매너를 골프나 스포츠 대회에 한정할 것은 아니다. 스포츠가 갖는 즐거움에 더해서 골프의 핵심가치인 정직성과 규칙을 따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골프 코스 밖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공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예절은 일상의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택중

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