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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미달 땐 대회 못 나가 … 연세대 축구부 14명 '발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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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5면

[2017 스포츠 오디세이] 대학 스포츠에 ‘C제로 룰’ 태풍

지난해 정기 연고전에서 1-3으로 진 연세대 축구 선수들. 오른쪽은 지난달 고려대와 연세대의 농구 경기. 사진 속 인물들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다. [사진 연세대 시스붐바?중앙포토]

지난해 정기 연고전에서 1-3으로 진 연세대 축구 선수들. 오른쪽은 지난달 고려대와 연세대의 농구 경기. 사진 속 인물들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다. [사진 연세대 시스붐바?중앙포토]

대학 스포츠에 ‘C제로 룰’이라는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학점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대회 출전을 아예 못하게 하는 제도다. 대학 스포츠, 나아가 대한민국 스포츠의 근간이 됐던 체육특기자 제도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연세대 축구부는 올해 대학축구 U리그에 불참한다. 축구부 28명 중 14명이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가 만든 룰에 걸려 대회 출전이 막혔기 때문이다. 93개 대학이 참여한 KUSF는 ‘학생 선수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대회 직전 2개 학기 학점 평균이 C0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학스포츠리그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2015년에 제정된 이 규정은 2년 유예 기간을 거친 뒤 올해부터 시행됐다. 연중 리그를 실시하는 4개 종목(1402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해당자(102명)는 축구가 89명으로 가장 많고, 농구 7명, 배구 4명, 핸드볼 2명이다.

주전 센터 못 뛴 연대 농구팀도 완패 #“장시호 영향으로 학점 짜게 준 탓” #방향은 맞지만 선수들 희생 커져 #공부·운동 병행할 대안 마련해야

연세대는 축구와 함께 농구도 ‘폭탄’을 맞았다. 주전 센터 김경원(2학년·1m98cm)이 학점 미달로 대학 리그에 출전하지 못한다. 지난해 고려대를 꺾고 대학농구리그 정상에 올랐던 연세대는 3월 13일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고려대에 79-93으로 완패했다. 김경원의 부재가 뼈아팠다.

연세대에 해당자가 유독 많은 이유는 장시호(구속)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장시호는 1998년 승마 특기생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과정에 의혹이 많다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 바람에 지난해 연세대가 학생 선수들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학점을 짜게 줬다는 것이다. 연세대의 맞수 고려대는 축구 3명, 농구 1명이 학점 미달에 걸렸다.

강신욱 KUSF 집행위원장은 “학생 선수 10명 중 1~2명만이 프로에 진출한다. 7~8명은 사회에 내동댕이쳐진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 만들기’는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고 말했다. 대학 운동부 지도자, 학생 선수들을 가르치는 교수, 함께 공부하는 일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형평성 문제 있는데도 일방적 시행”

연세대 축구부 신재흠 감독은 “지난해부터 ‘학점에 각별히 신경 써라’고 얘기를 했는데 우리 선수들이 출결 관리 등에 소홀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운동부끼리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학력 상위 1% 이내에 드는 연세대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서 학점을 따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취업을 앞둔 고학년들은 공식 경기에 못 나가고, 감각이 떨어질 것 같아서 걱정을 한다. 학생 선수들을 돕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일부 학생들에게 가혹하게 적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걱정했다.

전용관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는 단호한 입장이었다. “이번이 왜곡된 대학 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개혁할 천우신조의 기회다”고 강조한 전 교수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돼 스포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정유라 사건이 터지면서 체육특기자 입학과 학사관리 제도의 허상이 드러났다. 이 타이밍에서 학생 선수의 최저학력제를 밀어붙이지 못하면 잘못된 구조가 오랜 기간 더 온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C제로 룰이 통과된 이후 학생 선수들이 거의 100% 수업에 출석하고 있다. 매우 진지하게 강의에 참여하고,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낸다. 체육특기자는 수업을 못 따라올 거라고 하는 건 편견이다. 우리 학교 아이스하키 선수가 4.3 만점에 4.15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 그는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면서 취미로 아이스하키를 즐긴다”고 전했다.

연세대 학생들이 만드는 스포츠 매거진 ‘시스붐바’의 기자들을 만났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은 학생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찾아가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이연준(경영학과 4) 기자는 “축구 U리그에 출전하는 85개 학교 중에 KUSF에 가입 안 한 학교가 34개나 된다. 이들은 C제로 룰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건 불공평하다”고 했고, 최지영(언론홍보영상학과 3) 기자도 “우리 학교 학점은 4.3 만점인데 4.5 만점인 학교가 더 많다. 다른 학교는 운동부만 듣는 강의가 있고 이들끼리 경쟁하지만 우리 학교는 다르다. 이처럼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제도의 허점도 있는데 KUSF는 예상 가능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하지 않았다.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시스붐바 편집장을 맡고 있는 김세윤(스포츠응용산업학과 3)씨는 중 1때까지 수영 선수를 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운동만 시키다가 대학 와서 공부하라고 억지로 제도를 만들면 선수만 피해 본다”며 “체육특기자들이 일반 학생과 경쟁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 한 건 아니다. 운동 선수가 공부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일반 학생이 도와주는 멘토링 제도를 활성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기자 정원 점점 줄여나가야”

고려대는 7년 전부터 운동부끼리만 모여서 강의를 듣고 평가를 받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시작한 류태호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운동선수끼리 모아놓으면 ‘난 공부로는 경쟁이 안 돼’라는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고 공부에 재미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반면 일반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운동부끼리 하는 과목과 일반 학생과 함께 듣는 과목을 반반 정도로 조절하고 있다. 학생 선수들이 이수하는 커리큘럼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또 “대학 운동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리잡고 있다. 축구부에 고교 내신 1등급이 들어온 적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체육 특기만으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 수를 점점 줄이고 결국은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대학 운동선수들의 의견은 받지 못했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어떤 선수는 전화로 인터뷰 하기로 약속해 놓고도 끝내 약속 시간에 전화하지 않았다. ‘남들 공부할 시간에 죽어라 운동해서 대학 왔는데 이젠 공부 안 한다고 뭐라 하나’ ‘공부 못 한다고 대회 못 나가게 하는 건 인권침해 아닌가’ 하는 목소리를 꾹꾹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혼란과 아픔을 감싸주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공부하는 운동 선수, 운동하는 일반 학생’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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