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된 것보다 현지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꽌시(關係)’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더 중요한 중국에서 비난이 빗발쳤죠. 삼성 직원이 두 명의 머리를 강제로 누르는 듯한 모습까지 인터넷에 돌았어요. 체면을 서로 중시하는 중국인들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중국 지인들도 저에게 ‘왜’라는 물음을 수없이 던졌습니다.
류 박사는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했다. 1992년 대만에서 삼성의 지역 전문가 과정을 이수했다. 삼성그룹 베이징 주재원으로 일하며 삼성전자가 톈진(天津)에 휴대전화 공장을 설립 때부터 20년가량을 삼성그룹 계열사들과 중국 정부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해왔다.
꽌시(關係)=Guan xi
삼성전자 행사 사진을 보던 류 박사가 말을 이었다. “중국이라는 국가나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복잡한 ‘꽌시’의 심리적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꽌시를 영어로 ‘휴먼 릴레이션십(Human Relationship)’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꽌시는 그 이상이다. 단순한 인간관계나 사업적 관계가 휴먼 릴레이션십이라면 꽌시는 일단 친구가 되고, 의리를 지키며, 관계를 유지한다는 개념이 포함된다.”
사드 해결 돌파구가 될 두 개의 열쇠
사업차 중국인을 만난 한국인들은 막판에 태도를 달리하거나 약속을 어긴다며 ‘꽌시’ 맺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류 박사는 ‘꽌시’를 간단하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문화적 충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꽌시는 권력이나 재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통로”라며 “이를 얻기 위해서는 지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중국인과의 교류를 ‘꽌시’를 맺었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거다.
꽌시, 권력·재화를 확대재생산하는 통로
이를 얻기 위해선 지대한 노력과 시간 필요
중국인들의 대인관계는 먼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서양에선 금전 계약서나 실질적인 서류로 처음 보는 사람과의 계약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중국인의 꽌시 속에서 계약서란 개념 자체가 없다. 류 박사는 “중국인들이 용인하는 관계 즉, ‘꽌시’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을 무한정 열어젖힌다”며 “중국인에게 재산 가치나 시스템의 흐름보다 도덕과 신분의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꽌시’는 확장성이 대단히 넓다. 한국 사람들은 실제 안면 있는 사람에게 ‘친하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그는 “중국인에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도 아는 사람”이라며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친구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미엔쯔(面子·체면)’ 역시 ‘꽌시’만큼이나 중국인 고유의 정서다. 중국인이 서로의 체면을 훼손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중요시하는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류 박사는 “중국인들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상대가 한 말을 대놓고 부정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상대의 체면을 깎지 않기 위해서다. 서방인이나 한국인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먼저 내세우는 것과는 정반대다.
‘미엔쯔(面子)’, 뜻은 체면
‘꽌시’만큼이나 중요한 중국인 고유의 정서
중국인들이 서로 헤어질 때 끝없이 인사를 반복하는 것이나 선물을 받을 때 수십 번 사양하는 것 역시 모두 그들만의 ‘체면의 심리학’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뿐인가. 상대방의 체면을 고려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당사자의 체면에 관련된 부분이 애초부터 누락 경우도 빈번하다.
‘사드’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 항저우에서 있었던 G20 한·중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시진핑 주석은 분명한 어조로 '사드 반대'를 외쳤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것도 없다’는 ‘3No’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얼마 후 박 전 대통령은 돌연 태도를 바꾸면서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상한 ‘꽌시’와 ‘미엔쯔’는 다시 ‘꽌시’와 ‘미엔쯔’로 풀어야 해!
류 박사는 “중국 리더들은 오랜 친구(老朋友)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뜻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특히 자국의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의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드 보복의 ‘심리적 도화선’이라는 거다.
인터뷰를 끝내며 류 박사는 한자어 두 마디를 적었다.
‘불가불가(不可不可)’, ‘필승한국(必勝韓國)’
한중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응원단이 ‘필승한국’이라는 깃발을 흔들었다고 치자. 이때 중국인들은 손뼉을 친다. 중국어로 필승 한국은 한국을 반드시 이긴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한국 필승’이 맞다는 게 중국인들의 말이다.
이렇게 같은 말을 놓고도 한중 간에 해석이 다릅니다. 하물며 문화나 가치관은 말도 못하지요. 그래서 서로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사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한중 모두 상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이해’에서 찾자는 얘기다.
차이나랩 김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