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경제공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선거란 확실히 좋은 것이다. 한 사람이 오래 집권하다보면 자기 생각만이 옳고 정책구상과 실천 모두 좋은 의미로는 일관성 있게, 나쁜 의미로는 독선적이 되기 쉬우나, 선거때가 되면 그래도 혼자만의 생각보다 남의 생각을, 그것도 국민 각계 각층의 소리와 욕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만큼 선거는 있어 마땅한 큰 행사라 할수있다. 선거때가 되면 선거에 이기기 위해 귀를 널리 넓히지 않을수 없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지 않을수 없고 또 곳곳을 찾아다니며 현장답사까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몰랐던 것을 알게되고 자기가 얼마큼 잘못 알고있는지 반성하게도 된다.
선거는 또한 이렇게 모은 지식을 고르고 뽑아 정당의 공약으로 삼고 목청높여 약속을 하게 되기 때문에 기록에도 남으려니와 본인 스스로 머리속에 그 약속이 깊이 새겨질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모아놓고, 또 언론을 통해 분명히 약속한 사실인만큼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집권 후 그래도 지킬 마음가짐이 설 것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선거라는 민주장치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과나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때 외친 선거공약은 불행히도 우리 역사상 한번도 그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많은 돈을 들여 허울좋은 선거를 치르고 난 뒤엔 혼자만 제왕이 되고 그때부턴 집권한 사람 마음대로, 선거때 한 얘기를 잊는것도 마음대로, 마음이 내켜 조금 실행하는 것도 마음대로며, 모든게 또 한사람의 생각으로 좁혀지고 굳어져 그후는 「전문연구가의 의견이기 때문에」 또 「현실이익을 존중해야되기 때문에」라는 여러 명분을 내세우면서 나라정치와 경제를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끌어나가기 십상이었다.
선거때의 공약과 선거 후의 공약이 다른 이유는 선거때 공약을 하긴 해야하나 사실 마음속으로는 공약이란것을 미리부터 알고 한 공약이었으며 이 공약이 정말 민심인지 아닌지 보다 그냥 주워 모은 얘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었고, 그보다도 그 공약이 사실 실현가능하지 않은 비효율적인 욕구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 태반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즈음 듣고 있는 그 숱한 선거공약 역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정치에 관한 것이야 지키지 않으면 지키지 않은 대로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경제에 관한 공약은 지키면 지키려 할수록 또 지키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만큼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공약을 한 사람 모두 퍽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한창인 경제공약의 남발은 우리 경제내에 잠재되어있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논리나 법칙으로 따진다면 어떤것은 너무 맹랑하고 또 어떤것은 너무 고의적인 감이 짙다. 이런 공약들은 정당구성요인들이 문을 활짝 열어제친 지식의 객관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 보다 아직도 소수의 문을 걸어 닫은채, 좁은 지식권내에서 시간에 쫓겨 내뱉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처음부터 경제야 어떻게되든 공약만 남발하는 그런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 정말 민주화의 길이 아니다. 참된 경제 민주화는 경제에 관한 몇가지 주요 선거공약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거친뒤 어느 한쪽이 선택, 당선되면 그 공약이 그대로 정책으로 집행되어야 하고 그럴수록 국민은 물론 집권자도 그 공약에 처음부터 몸조심, 입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정치·경제는 아무리봐도 한사람을 내세워 정권을 잡기만하면 되고 그런후엔 그를 둘러싼 소수의 선거공로자들만 이상을 받게되는, 그래서 열심히 사람들을 모아 그 앞에서 여러 공약을 공약으로 채워 인기를 얻고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너무 팽배해지고 있다.
참된 선거공약을 허심탄회하게 생각하고 마련하여 양심에 바탕하면서 엄숙히 공약하고 이 공약이 실현된다만 스스로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할텐데도, 또 선거에 이기면 자기의 공이고 이기기만하면 된다는 비민주적인 사고방식에서 일탈하여야 할텐데도, 나아가 국민은 이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새겼다가 선거후 또 하나하나 감시하고 체크하며 이것이 다음 선거의 바로미터가 되어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선거는 혹 길을 잘못 들어선것이나 아닌가하는 염려를 낳게 하고 있다.
우리국민들 모두의 정치·경제의식은 이제 정치인들보다, 또 공약을 만들어내는 어떤 사람들보다 낮지 않다. 오히려 더 앞서고 있으며 그런 점을 인식, 경제공약의 기준이 마련되어야만 할 줄 안다. 국민 모두의 의식수준이 민주화의 기둥이며 활력이 되도록 정치인의 인식차원을 오히려 높이는데서 우리 민주화의 길을 열지 않으면 안될줄 안다. 선거공약이 공약이 될때 정치에서는 잊어버리기만 하면 되고 또 누르기만 하면 될지 모르지만, 경제는 생산에서, 수출에서, 농촌에서, 도시에서 그만큼 주름살이 짙어지며 우리생활에 깊숙히 모순과 저어를 가져오게된다.
선거때 든 선거비용이 통화공급량을 크게 늘린다는등 이런 것보다 노사분쟁의 해결에 관한 각 정당의 공약, 시장경제의 원리와 기업내 공동의사 결정기구설치등 이런것들이 얼마나 우리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지 크게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냥 들떠 경제공약이 정치공약속에 숨어버릴때, 그것을 지키려하면 어려움이 닥치고 지키지 않으면 약속위반이 되는 그런 상황이 되지않도록 경제공약의 선택에 특히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공약이 너무 많으면 선거후 또 불신이 싹트게된다. 정치인을 믿지 않게되고 정치인들에서 멀어지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경제의식에 큰 전환이 있어야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