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박정자씨 '사랑'을 무대에 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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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정자씨(왼쪽)가 연극 '19 그리고 80'에서 '굴렁쇠 소년' 윤태웅씨와 키스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6일 오후 서울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에서 파키스탄 돕기 자선특별공연을 마친 박씨가 관객들과 뒤풀이를 하고 있는 모습. [PMC프로덕션 제공]

"옛날 엄청 긴 다리와 큰 담을 만들던 건축가 두 사람이 있었어요. 자금이 떨어지자 간절한 기도를 드렸대요. 짜잔~ 그때 부처님이 나타나 다리를 짓던 건축가의 고민을 들어줬어요. 황금 마차를 끄는 소 한마리가 나타난 것이지요. '이 돈으로 더 많은 다리를 놓아 세상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해주라'고 부처님은 축원했어요. 다음은 담을 만들던 건축가. 부처님은 그의 고민을 들은 뒤 역시 소를 나타나게 했지요. 웬걸, 소가 담벼락에 올라타 깔아뭉개고 말았지요."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 연극계의 거물 배우 박정자(64.모드 역)씨가 극중의 '19세 애인'인 윤태웅(25.해롤드 역)씨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연극'19 그리고 80'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80세 여인. 웬일인지 이날 그의 목소리는 사랑.나눔의 메시지 그것이었다. 특별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없는 월요일을 택해 박씨는 '특별한 손님들'을 모셨다. 장기 공연(1월8일~2월19일)에 지친 몸을 돌보지 않는 명배우의 강행군에 객석도 따뜻하게 화답했다.

객석은 지진피해를 입은 파키스탄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사랑의 티킷(5만원)'을 구입한 300명으로 가득찼다. 문화계 인사들도 보였다. 전통벽돌연구가 김영림(63), 한일문화교류 전문가 히데아키 가와하라(62), 보림출판사 권종택(56)대표, 사계절 출판사 강맑실(50) 대표와 편집자 10여명…. 의정부변호사회 소속 김 섭.이재준.강성수씨 등 10여명 변호사들과 마수드 칼리드 주한파키스탄대사 부부도 자리를 함께했다.

"고마워요. (삶의) 경이로움을 보여줘서…."(윤태웅)

"그래. 오늘이 바로 기적의 날이야."(박정자)

착각일까? 61세 나이 차를 넘어선 사랑의 고백은 한국.파키스탄을 오가는 휴머니즘의 대화로 들렸다. 박씨의 파트너 윤씨는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굴렁쇠 소년. 당시 서울올림픽 주제가 '벽을 넘어서'란 점을 염두에 두면 이날 무대는 또 한번 벽을 넘어서는 현장인 셈이었다.

"여러분, 지난해 결성된 민간 자선그룹인'파키스탄1004'(전화 031-878-4090)를 아시죠? 지진 피해 이웃에게 1004채의 집을 지어드리는 계획은 이미 성공했습니다. 450채 살림집이 만세라 지역에 건설됐고'디올리코리아 빌리지'로 명명됐습니다. 박 선생님이 오늘 희사할 공연수입 1만 달러는 그 마을에 '박 스쿨'로 문을 엽니다. 오늘 참석한 여러분들은 구한말 한국 땅에 대학을 지어줬던 언더우드가 사람들입니다."(박수)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오른 손광운 변호사('파키스탄 1004'총무)가 경과보고를 했다. 박씨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이어 로비에서 벌어진 뒤풀이는 '지구촌 우정의 무대'하이라이트였다. 쌀 두 말로 만든 떡과 와인을 곁들여 300여명의 '천사들'이 밤 늦게까지 '이웃사랑'을 이야기했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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