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파면됐다고 트위터 '계정폭파' 해야만 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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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선고로 파면당하고 나흘이 지난 13일, 청와대 홈페이지가 문을 닫고 개편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운영해오던 트위터와 페이스북 페이지 등 소셜미디어 계정 등도 모두 사라졌다.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는 만큼 청와대와 관련한 공식 '국민소통 채널'은 존치했어도 되는 일 아니었을까. 청와대 측의 이러한 계정 관리에 논란이 일고 있다.

SNS 게시물도 '대통령 기록물'일까?

법조계 전문가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게시된 연설문이나 대통령 말씀 영상 등도 모두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이 법 제2조(정의) 항목을 보면 1의 2에서 '대통령기록물'을 정의하고 있는데, 이 정의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호를 따른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제3조 제2호 - 기록물"이란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ㆍ도서ㆍ대장ㆍ카드ㆍ도면ㆍ시청각물ㆍ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行政博物)을 말한다.

유영무 법률사무소 조인 대표변호사는 "정의조항에서 분명히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보좌기관이 생산한 기록물을 언급하고 있고 정의도 명확하게 하고 있다"라며 "온라인 공간에 올라온 자료들이 기록물이 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계정폭파'는 어떻게 봐야 하나?

청와대의 트위터 공식 계정과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는 사라졌고, 청와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6년 신년 인사' 등 동영상이 모두 없어졌다. 인스타그램도 볼 수 없다. 특히 청와대의 인스타그램은 '최순실 게이트'가 한창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운영이 시작돼 불과 5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누리꾼들은 이 같은 행위를 '계폭'이라고 부른다. 계정을 폭파했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공식 채널을 모두 '계폭'한 셈이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 제14조(무단파기ㆍ반출 등의 금지)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이에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SNS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은 기록물로 볼 수 있지만, SNS 계정 그 자체를 기록물로 보기엔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병찬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는 "SNS 계정 폐쇄를 '멸실'이나 '파기'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법률적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라며 "계정을 폐쇄하면 내용을 못 보게 되지만, 이를 기록물 자체를 폐기했다고 보기엔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어서 "지금까지 올렸던 SNS의 모든 내용들은 파기하면 안 되지만, 갈무리나 캡처, 혹은 별도로 기록하거나 복사해서 내용을 보관하고 있다면 계정의 삭제는 기록의 폐기와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공식 계정이 모두 삭제되거나 비활성 처리됐다.

청와대 공식 계정이 모두 삭제되거나 비활성 처리됐다.

새로운 미디어에 고민 필요할 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 이상 이에 따라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페이스북에서 대통령 신년사 게시물에 달린 시민의 댓글과 반응. 트윗의 '리트윗' 횟수로 대표되는 공감도 등도 먼 미래에는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매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지환 오픈넷 자문변호사는 "SNS도 기록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기록물로 생산·관리돼야 한다고 보이고, 정책적으로 중요한 기록이기 때문에 함부로 지우거나 계정을 탈퇴하거나 비활성화 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라며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서 다음 대통령에 계정을 이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폐쇄하면, 댓글 등 그런 기록들에 접근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 중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이른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 트윗에 미국의 기록학자들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 쓴 오탈자 등도 모두 기록물로 봐야 하며, 따라서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임의로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윗에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위대한 미국인들을 섬기게 되어 영광이다(I am honered to serve you, the great American People. as your 45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썼다. 하지만 'honered' 단어에서 맞춤법이 틀렸다. 이는 곧 'honored'로 수정됐고,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트윗을 지워버렸다.

네이트 존스 조지워싱턴대 국가안보기록보관소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에 "대통령의 트윗은 그 안의 오타까지도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은 뒤늦게 트럼프의 개인 계정도 국가기록물이며 보존돼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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