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남용 때문에 파면" 결정이 남은 재판과 수사에 미칠 영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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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도 권한남용이라는데….”

검찰 2기 특수본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결정을 두고 조심스런 기대감을 내비쳤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사유를 판단하면서 대기업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연받아 미르ㆍK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부분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한남용’이라고 판단한 부분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최고 사법기관이라는 헌재가 권한남용으로 판단했다면, 검찰에서도 이를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법리 상 직권남용이나 강요의 피해자는 뇌물공여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 검찰은 기업들의 재단 출연금에 대해 대가성 뇌물로 지급했다는 해석과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는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재단 설립 문제에 대한 헌재의 법적 인식은 지난해 말 검찰 1기 특수본이 내린 결론과 대체로 일치한다. 실제로 헌재는 자체 증인 신문과 증거 조사를 제외하면 검찰이 제공한 1기 특수본 수사 기록을 탄핵 인용 판단의 주된 근거로 활용했다. 헌재 심리와 동시에 진행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진술과 물증은 탄핵 심판에 활용되지 못했다.

특검팀은 삼성전자 이재용(49) 부회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1기 특수본의 ‘프레임’을 180도 뒤집어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검찰 2기 특수본은 CJㆍSKㆍ롯데 등에 대한 수사에서 뇌물공여 혐의 적용을 검토중이다. 검찰은 지난해 1기 특수본 수사 당시 기업을 강요죄 피해자로 결론내린 만큼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선 최순실(61)씨 등에 대한 공소장 변경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헌재가 재단 출연금을 직권남용의 결과라고 본 것은 특검팀이 적용한 '뇌물죄 프레임'을 수용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헌재는 탄핵심판 진행과정에서 “특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의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유ㆍ무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검 수사자료 없이도 탄핵 사유를 판단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게 재판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탄핵 사유를 판단하면서 헌재가 ‘직권남용’이라는 형법 상의 범죄명 대신 ‘권한남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같은 고려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내린 헌재의 탄핵 결정이 현재 진행중인 재판과 수사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게 법원과 검찰의 공통된 견해다. 법원 관계자는 “헌재의 탄핵심판과 법원의 재판은 성격과 체계 자체가 달라 헌재 결정이 법원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한 검찰 내부 인사는 “특검이 70일간 수사를 통해 드러난 증거를 바탕으로 뇌물죄를 적용한 만큼 특수본 또한 추가 수사 결과에 따라 강요죄가 뇌물공여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ㆍ김선미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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