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시인 김명인 vs 소설가 한 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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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인 김명인(57)씨와 소설가 한강(33)씨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봄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가 된 한씨는 겨울에 발표한 중편 '여수의 사랑' 첫머리에 김씨의 시 '여수'를 인용했다.

두사람은 올해 나란히 미당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을 냈다. 김씨는 '산아래' 등 12편의 시로, 한씨는 중편 '노랑무늬영원'으로 각각 주목을 받았다. 두사람은 당연히 여수 얘기를 꺼냈다.

한씨가 "시가 마음에 들어 여러차례 읽었다. 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여수의 사랑'을 보름 만에 썼다. 시를 인용할 때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하자 김씨는 "내 시가 인용돼서 오히려 소설을 유심히 보게 됐다"며 한씨를 다독였다.

김씨는 "여수의 사랑은 작가가 자신 안의 감정의 격랑을 응시하는 자세, 톤이 좋았다. 인내하는, 강인한, 응시하는, 관조하는, 물러난, 그런 톤 자체가 (삶을 살아가도록)버텨주는 힘이 아닐까"라고 평했다.

김씨는 "한씨의 소설에는 실존의 시간 이면의 생의 어두움이랄까,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열망이랄까 그런 주제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내 시도 주제를 따지자면 그런 쪽이어서 반갑다"며 '노랑무늬영원'에 대해 언급했다.

'노랑무늬영원'은 교통사고를 당한 여(女)화가가 물컵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양손을 못쓰게 된 뒤 한때 헤어지기 싫어 죽음이 두려웠을 만큼 사랑했던 남편과도 멀어지고 그림도 포기하게 되는 절망스런 과정을 다뤘다. 영원(洛潼)은 도롱뇽과에 딸린 속명이고 노랑무늬영원은 중동의 사막에 서식하는 불도마뱀(Fire Salamander)의 학명이다.

한씨는 "예전에 선생님의 시집 '물건너는 사람''머나먼 곳 스와니'를 좋아해 즐겨 읽었다. 이번 후보작에 오른 시 중에서는 '외로움이 미끼''얼음물고기'같은 시들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는 삶의 바탕이 되는 경계를 의미한다. 바다는 삶의 경계이고 변경이다. 경계는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근원적 향수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산아래'에서 저녁 어스름이라는 시간도 하나의 경계이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도 역시 경계라는 설명이다. 김씨는 "그런 경계적인 상황이 시적 주체를 가져다 놓을 만한 자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로 등단 31년째를 맞는 '한참 선배'가 아직 갈길이 훨씬 더 남은 후배에게 관심어린 질문들을 던졌고 대답이 이어졌다. "긴장과 힘이 떨어지는 순간이 작가에게는 위기"라는 김씨의 말에 한씨는 "글을 쓸 때 자유스럽고 각성된 느낌을 받는다. 글쓸 때의 충일감이 없다면 일상은 너무 갑갑할 것이다. 글쓰는 일만이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든다"고 대답했다.

글=신준봉,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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