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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접시닦이가 세계 최고의 직업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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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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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마’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2003년 처음 문을 연 이후 2007년 미쉐린(미슐랭) 스타를 처음 받았고, 2010년엔 당대 최고라던 스페인 ‘엘 불리’를 제치고 최고 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노마 덕분에 코펜하겐 관광객 수가 12%나 늘었다는 통계를 보면 단순한 레스토랑을 넘어 덴마크의 대표 상품이자 세계 미식가들을 설레게 하는 상징적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대단한 레스토랑이 최근 또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오너 셰프인 르네 레드제피(39)가 2003년 개업할 때부터 14년간 함께 일해 온 접시닦이 알리 송코(62)를 지분을 나누는 파트너 중 한 사람으로 발탁한 것이다.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 이민자이자 12자녀의 아버지인 송코가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주인이 됐다는 얘기다. 비록 레드제피가 현지에서 나는 식재료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는 바람에 신맛 내는 살아 있는 개미나 먹을 수 있는 흙이 접시에 올라오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접시 닦는 데에 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진 않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알바나 비정규직 자리도 겨우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덴마크가 직업에 귀천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이번 선택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역시 이민자 출신으로 평생 접시닦이를 했던 레드제피 아버지(64)도 물론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실제로 레드제피는 “아버지와 이름(알리)도 같다”며 “늘 밝게 웃는 송코는 노마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노마 정신’을 구현한 것이라는 게 더 맞는 분석 같다.

2014년 방한했던 레드제피는 당시 ‘노마 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꿈을 좇지 않고 자신의 본능을 믿고 이를 정직하게 따르면 성공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 2010년 노마가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선정될 때 빚어진 해프닝(비자 문제로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송코가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레드제피와 직원들이 송코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때문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접시닦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송코는 “노마에서 접시 닦는 일은 최고의 직업”이라며 “주인이 됐지만 여전히 접시를 닦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접시닦이는 천한 직업일 수 있다. 하지만 레드제피와 송코는 신뢰와 정직, 그에 따른 성공 스토리를 만들면서 접시닦이를 세계 최고의 직업으로 만들었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