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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한제국 120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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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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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는 거북이 모양이다. 황제어새(皇帝御璽) 넉 자가 새겨져 있다. 고종(1852∼1919) 황제가 사용한 국새다. 고종은 일제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이탈리아 등에 보낸 비밀친서에 이 도장을 찍었다. 흥미로운 건 어새의 크기. 다른 것에 비해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가로 5.3㎝, 세로 5.3㎝, 높이 4.8㎝다. 고종이 비밀리에 쓰려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국제정세가 급박했다.

고종 어새는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지난달 말 전시장을 새로 꾸몄다. 전시 공간을 1.5배 늘리고, 관련 유물도 100여 점 보강했다. 입구부터 볼거리가 풍성하다. 고종이 국정을 살핀 경운궁(현재 덕수궁) 정전(正殿)인 중화전과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일부도 재현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자주국가를 세우려 했던 고종의 고투를 엿볼 수 있다.

대한제국은 13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다. 1910년 일제에 통치권이 넘어갔다. 반면 행정·군사·재정·교육·의료 등 전 분야에 걸쳐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넘쳤던 시기다. 국가 의례도 재정비했다. ‘황제국’ 자존심에 방점을 찍었다. 우선 궁궐 장식 문양을 봉황에서 용으로 바꿨다. 의복·의궤 등에는 황실을 나타내는 황색을 사용했다. 훈장·우표·여권 등에도 태극 무늬가 국가 상징으로 본격 등장했다.

새 전시실은 친절했다. 한 세기 전 상황을 재연한 영상물, 도자기·가구 등 황실용품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자주국가를 향한 고종의 개혁 의지가 도드라진 반면 외세에 무릎 꿇은 아픔에 대한 조명은 소략한 편이다. 대한제국의 한계도 좀 더 다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도 이제 역사의 명암을 동시에 볼 만큼 크지 않았을까. 박물관 측은 “소장 유물이 한정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한국이 120년 전과 닮았다는 걱정이 요즘 늘고 있다. 외교든 경제든 미국·중국·일본에 난타당하는 현실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진영 대립도 심상찮다. 그래도 단순 비교는 섣부르다. 지금은 황제의 시대가 아니다. 시민이 주도하는 시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다. 광장을 메운 민초의 양식을 믿는다. 위정자들도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조(遺詔·유언)는 이렇게 끝난다. “여러분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冥冥)한 가운데 여러분을 도우리라.”(1926년 7월 28일자 신한민보)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