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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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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저곳에서 "찰싹" "철퍼덕"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옛말이 있지만 아직은 무더위가 모기 편이다. 지난 8일 오전 2시, 대낮처럼 불을 밝힌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초등학교 건물에서는 사람들 땀 냄새에 꼬인 모기를 잡는 대회가 벌어졌다.

전국에서 모인 건축가와 각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 1백70여 명이 닷새째 새우잠을 자며 토론을 벌이고 있는 초등학교 교실은 논쟁의 열기가 더해져 찜통이다. 창문마다 내걸린 빨래들 사이로 노란색 현수막이 펄럭인다. '다른 시각과 열린 논의들-새만금에서'.

서울건축학교가 4일부터 9일까지 연 올 여름워크숍(학교장 김원)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새만금'을 주제로 삼았다.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이 갯벌 훼손과 수질문제 등으로 새만금 간척사업의 집행을 정지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난 참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노태우씨가 전북 지역의 표를 얻으려 새만금 사업을 내건 지 1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침묵했던 건축가들이 입을 뗐다.

조성룡.정기용.민현식.김인철.승효상.이일훈씨 등 서울건축학교를 이끌어온 건축가들은 "강행과 중단이라는 양끝을 제외한 구체적 대안이 적었던 새만금에서 다른 시각을 확인하며 열린 논의를 통해 소극적인 비판이 아닌 적극적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장에 와보니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이 안됐어요.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사안까지 겹쳐 동네가 뒤숭숭한 터에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이 새만금을 들고 떠드니 정부 쪽 사람들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나봐요. 어젯밤에는 청년회에서 찾아와 항의하기에 건축가의 잣대로 새만금을 다시 바라보는 마음을 전하느라 혼났습니다."코디네이터를 맡은 최문규(가아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새만금을 따로 떼어내지 말고 국토 전체 속에 놓고 보자는 것이 건축가들 뜻"이라고 말했다.

일본 시가(滋賀)현립대학에서 온 일본인 2명을 포함해 63개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 1백40여 명은 지도교수 2명씩이 붙은 스튜디오 11개로 나뉘어 구체적인 건축안을 내놓느라 낮밤을 잊고 있었다.

조경만(목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새만금생명학회 대안분과위원장으로부터 강의를 들은 외에는 끼니마다 도시락으로 때우며 촌음을 다퉈 대안을 정리하는 학생들 눈빛이 진지했다.

최욱(스튜디오 최욱 대표)씨와 한 스튜디오를 맡아 학생들을 지도한 일본 건축가 인나미 히로시(印南比呂志)는 "새만금은 어찌 보면 정치적 논쟁거리이기도 한데 건축가와 학생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순수하게 대안을 연구하는 태도는 아름답다"고 놀라워했다.

8일 아침이 밝자 스튜디오를 드나들며 "마무리!"를 외치는 지도교수들의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낮 12시30분에 시작할 발표회와 토론.비평회가 코앞에 닥치니 분초가 아쉬운 학생들은 도면과 모형에 개미처럼 달라붙었다.

새만금에 조성될 1억2천만평 땅을 연결해 환상(環狀)의 도시를 만들자는 '민현식.김영준 스튜디오', 홍콩.시드니 등 세계 여러나라의 항구도시를 새만금에 대입한 '김인철.박태홍 스튜디오', 방조제를 활용해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이종호.김광수 스튜디오', 염전의 물길을 따라 바다 납골당과 묘지 공원을 조성하자는 '승효상.김병윤 스튜디오', 새만금을 주제로 한 영상물을 내놓은 '전인호.임재용 스튜디오' 등 신선한 제안이 쏟아져 나왔다.

최문규 코디네이터는 이번 워크숍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어내고 9월 초 전시회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방조제 옆 조그마한 초등학교 마당에서 벌어진 새만금에 대한 건축가들 토론은 시간을 잊고 공간을 넘어 서해로 흘러들었다. 새만금에 대한 건축가들 발언은 이제 시작이다.

부안 =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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