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후분양제가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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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Q. 얼마 전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주택 공급과잉이나 가계부채 급증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이란 얘기도 들었는데, 이게 뭔지 자세히 알고 싶어요.

지금까진 모델하우스만 보고 청약 #건축업자, 계약금으로 건설비 조달 #소비자는 분할납부·시세차익 효과 #가계부채 늘고 공급과잉·투기 과열 #정치권서 후분양제로 전환 주장 #건설사·고객 부담 커져 실행 미지수

집 지은 뒤 입주자 선정, 투기 줄고 품질 향상 … 분양가는 시세로"

A. 틴틴 여러분은 물건을 살 때 어떻게 하나요. 운동화를 사든 가방을 사든 당연히 제품을 확인한 뒤에 구입하죠. 디자인이나 색상은 물론이고 하자가 있는지도 꼼꼼히 따져야 하니까요. 같은 맥락으로 아파트가 지어진 뒤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분양을 받는 게 후(後)분양제예요. 언뜻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주 드문 분양 방식이죠.

후분양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선 우선 국내 분양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은 선(先)분양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1977년 국내에 도입된 선분양제는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기 전에 분양을 하고, 소비자가 공사 기간인 2~3년 동안 조달하는 돈(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방식이에요.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파트는 인생을 살면서 사들이는 가장 비싼 물건인데, 정작 실물은 보지도 않고 사고 있어요. 현행법상 아파트 분양 때 '선분양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주택시장에선 40년간 관행으로 정착됐어요.

자료:업계 종합

자료:업계 종합

이런 불합리해 보이는 방식이 도입된 건 당시 주택보급률이 70%대에 불과할 정도로 집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민간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 건설사들이 사업자금을 빌리기 어려운 점도 한몫했죠. 정부가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선분양제를 도입해, 건설사에 소비자의 돈으로 자금들 조달하는 길을 터준 셈이에요. 재미있는 대목은 소비자의 이해도 맞아떨어졌다는 점이에요. 분양을 받고 2~3년 후 입주 때까지 분양권(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 가격이 오르면 전매를 통해 쏠쏠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전 재산이 걸린 아파트를 사면서 모델하우스만 보고 결정하고, 건설사에 돈을 미리 내야 하는 데도 소비자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에요.

그런 선분양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어요. 부동산 투기와 주택 공급과잉, 가계부채 급증을 부른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거든요. 특히 집값 상승기 땐 건설사들이 주택 분양을 늘리고, 투기자들은 분양권 전매를 통해 많은 돈을 벌며, 중도금이나 잔금을 내는 과정에서 은행 대출을 받는 구조니까요. 그뿐 아니에요. 소비자가 돈을 미리 내기 때문에 입주 후 발생하는 각종 피해를 보상받는 데 제한적이고, 건설사가 자칫 부도날 경우 그 피해를 소비자가 떠안아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어요. 일부에선 선분양제를 후분양제로 바꾸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해요.

그동안 후분양제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후분양제 전면 도입이 검토되기는 했죠. 정부가 이를 통해 부동산 과열을 막고 아파트 분양원가 투명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봤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흐지부지됐어요. 후분양에 따른 비용이 분양가에 전가된다는 지적을 비롯해 건설업계 반발이 심했고, 2008년엔 금융위기까지 터졌으니까요. 그나마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서울에 공급하는 공공아파트에 후분양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아요.

그러다 올해 다시 후분양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예요. 정치권에서 시작된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정부와 건설업계로 확산되는 모습이에요.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지난해 12월 주택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건설사가 주택을 80% 이상 지은 뒤 입주자를 모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같은 시민사회단체도 "후분양제를 의무화하라"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고요.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분양권 전매시장이 없어져 투기 거품이 사라지고 주택 품질도 좋아질 것이란 이유 때문이에요. 또 건설사는 2~3년 뒤 준공 시점의 주택경기에 맞춰 아파트를 분양하려고 할테니, 공급량을 조절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죠.

자료:경실련

자료:경실련

주택정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말 발표한 '2017 경제정책방향'에서 후분양 보증과 대출금액 확대 등 후분양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고, 산하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후분양제 도입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어요. 금융당국도 후분양제 도입 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예요. 선분양제 하에서 증가세를 보이던 중도금 대출 등 가계부채를 줄일 것이란 계산 때문이겠죠.

그럼 이번엔 후분양제가 도입될 수 있을까요. 그리 쉽지는 않을 거예요. 후분양을 시행하면 얻는 것 못지 않게 잃는 것이 많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에요. 분양가 상승이 대표적이에요. 후분양제 하에선 건설사가 그간 소비자로부터 받았던 건설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해요. 금액 규모가 상당해 금융권에 손을 벌릴 공산이 크죠.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하게 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늘어난 금융비용은 결국 분양가에 얹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책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소비자들은 싸게 집을 구입할 기회를 잃게 돼요. 게다가 자금력과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견·중소업체들은 자금난에 빠질 수 있어요. 신규 분양시장이 소수의 대형 건설사 위주로 재편될 공산이 커지는 셈이죠. 소비자 입장에선 목돈 부담이 커지는 게 단점이에요. 지금은 분양받으면 2~3년 동안 조금씩 돈을 냈지만, 후분양제 하에선 짧게는 몇 개월 안에 비싼 집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후분양을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주장해요. 수 십년간 선분양을 시행해 온 만큼 후분양제를 도입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많아요. 업계에선 현 상황에서 후분양제가 성공하려면 프로젝트 파이낸싱(PF·건설사 신용보다 사업 수익성을 평가해 금융기관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 등 건설사들이 공사비를 조달하는 금융기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해요. 물론 정부 의지도 중요하고요.

틴틴여러분, 이제 감이 좀 잡히나요. 분양 방식의 흐름과 그 배경을 알아봤으니 뉴스를 이해하는 게 더 쉽고, 재미있어질 거예요. 조만간 후분양제가 도입될지, 아니면 10여 년 전처럼 유야무야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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