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지평도 넓혀라 -금서대폭 해제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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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 「금서」들이 풀려났다. 문공부는 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행정지도라는 이름아래 시판을 못하게 종용해온 도서 6백50종을재심, 4백31종의 판매를 허용하는 한편, 그동안 꼭꼭 묶어 놓았던 출판사 등록의 개방, 납본필증의 즉시 교부 등 출판활성화 조치방안을 확정, 19일 발표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조치는 출판계가 새로운 권리를 얻은 게 아니라 잃었던 권리를 되찾은 것에 불과하며, 또 월북 및 공산국작가의 작품 38종을 포함하여 2백19종의 도서가 계속 유보된 상태에 있어 완전한 활성화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더구나 월북작가의 작품을 제외한 이들 미해금도서는 앞으로 사법적 절차에 의해 해금여부가 판가름 나게 되어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출판사의 신규등록은 물론 명의·상호변경도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몇몇 출판사는 아예 문까지 닫게되고 기존 등록증에 3,4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 실정을 감안한다면 이번 조치는 다소 미진한대로 우리 출판계의 일대 전환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지난 1일부터 우리나라는 세계저작권 조약에 가입함으로써 외국인 저작자에 대한 막대한 저작료를 지불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인해 신규 출판사의 난립과 함께 출판물의 양산을 예상하면 출판계의 경쟁은 하층 가열될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어떤 내용의 출판물을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느냐가 앞으로 우리 출판계의 당면한 과제다.
출판산업은 국민의 의식과 정신에 깊이 관여된 문화견업의 하나이므로 단순한 경제적 이윤추구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출판의 자율과 함께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알다시피 이번 해금도서의 대부분은 이른바 「이념서적」들이다. 그리고 그 이념서적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의 저작을 번역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여건은 그동안 이념사상을 폭넓게 소화하는 지적 풍토가 조성되지도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소화하려는 노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의 일부 이념서적들이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을 비판하고 보완하는 학계의 활발한 연구성과가 미진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대가 발표한 「대학백서」에 의하면 교수들의 연구논문과 저서들이 근년 들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단적으로 대학의 연구기능이 크게 저하되었다는 뜻이라 우리에게 적잖은 우려를 준다.
결론적으로 이번 금서의 해제조치는 이념문제를 포함한 학문연구의 지평이 크게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국제 저작권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출판계는 국내 집필자의 발굴, 육성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이번 금서해제를 계기로 학계와 출판계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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