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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공장 자리까지 간섭하는 트럼프, 자본주의 경제 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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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공일이 만난 석학 (끝)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
트럼프 시대 세계는 어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자칫하면 시장의 힘을 작동하게 하는 자본주의 강점을 훼손할 수 있다고 봤다. 본지 사공일 고문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 펠프스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경쟁 북돋워야 기업들이 기술혁신 #스타트업이 “경제 동맥경화” 막아 #중국 기업가정신·혁신 왕성하지만 #경제구조·제도 결함 덮을 수준 안 돼 #교육·노동시장 적절한 개혁 따르면 #지금과 전혀 다른 종류 일자리 생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 연구실에서 본지 사공일 고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펠프스 교수는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오른쪽)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 연구실에서 본지 사공일 고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펠프스 교수는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사공일=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보나.

▶에드먼드 펠프스=크게 봐서 미국 정치 기류가 국제주의(cosmopolitanism)에서 국가주의(nationalism)로, 좌편향된 ‘도시 엘리트주의’에서 우편향의 ‘시골 인기주의’로 변한 것 같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경제적 요인이 크다고 본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불리는 쇠퇴한 공업지대, 특히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인근의 뉴욕주 북부,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버지니아주, 켄터키주, 아이오와주, 오하이오주 등의 실직한 많은 백인 근로자는 부모 세대보다 나아진 게 없고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무시됐다고 느꼈다고 본다. 이들이 선거에 결정적 요소였다.

▶사공=이들에게도 일정한 사회복지 혜택이 주어졌지 않나.

▶펠프스=그렇긴 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가족에게도 떳떳한 ‘의미 있는 일’에서 밀려났다는 심리적 박탈감에 차 있었다. 그들 중 일부가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를 찾게 됐더라도 예전만큼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상당히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했던 근로자들마저도 작업하는 과정에서 크든 작든 자신들이 판단해야 하는 일이 있었고 자신들이 어느 정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좌절감이 컸을 것 아닌가. 게다가 민주당 정부는 이러한 근로자들, 특히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흑인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트럼프 당선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는데, 그것도 민주당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그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해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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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당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처음 한 달 동안의 이민정책과 보호무역주의 관련 정책이 1930년대 초반의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파시스트 정부 이래 본 적이 없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실제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펠프스=트럼프는 개별 기업뿐 아니라 심지어 특정 기업의 개별 공장 수준까지 간섭하려 드는 무리한 시책을 펴고 있다. 아주 놀라운 일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강점은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기업가들이 즉흥적으로 뛰어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해 내는 시장의 힘이 제대로 작동되는 데 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관여하고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 강점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사공=당신은 항상 소위 ‘조합주의(corporatism·코퍼러티즘)’의 폐해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 이후 캐리어·포드 등에는 공장 이전을 하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는 반면 구글 등엔 지원을 약속하는 등 기업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것에 더욱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기술 혁신은 생산성·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펠프스=코퍼러티즘 혹은 조합주의는 본질적으로 간섭주의다. 코퍼러티즘은 1890년대 기독교인들의 협동정신에서 시작됐다. ‘모두가 상부상조해야 한다. 특히 기업은 근로자들을 도와야 하고 의료 혜택 등 모든 종류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흐름이다. 그런데 그 이후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주 광범위한 새로운 코퍼러티즘을 실행했다. 무솔리니의 조합주의 아래에서는 모든 기업이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활동해야 하고 항상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모든 산업 생산활동이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무솔리니의 코퍼러티즘은 실패했다. 공장의 입지를 포함해 기업활동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결국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사공=일자리 보호라는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트럼프의 기업 입지 등에 관한 간섭은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어쨌든 당신은 창업을 누구보다 중시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코퍼러티즘에 따른 정부 간섭이 시장경제를 해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 않나.

▶펠프스=그렇다. 시장에서 기존 기업들의 보호를 위해 새로운 스타트업 기업에 불리한 시책을 펴는 것은 마치 경제의 동맥경화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과 같다. 경제에 활력이 될 스타트업 기업들의 기업 혁신 동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사공=당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강조하기에 앞서 ‘경쟁’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펠프스=물론 경쟁이 우선이다. 기업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경쟁에 겁을 먹어야 한다. 과거 미국처럼 경쟁이 겁나는 시대로 돌아가야 하고, 그래야만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그 결과 경제가 잘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사람들은 경쟁보다는 ‘안전’을 바라고 정치인들은 ‘안정’을 더욱 중시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사공=트럼프는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두고 있다. 트럼프는 일자리와 실업 문제의 주요 원인이 무역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자칫하면 새로운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더 많은 실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악순환(vicious circle)의 고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펠프스=물론 무역은 국가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무역은 고용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무역에서 소외되고 손해를 본 계층에 대해 충분한 대책을 취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밀물은 모든 배를 뜨게 한다’는 생각만 가졌다고 할까.

▶사공=전적으로 동감한다. 경제학자와 정책 담당자들은 무역의 거시경제 전체 혜택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그 혜택의 분배와 미시경제 차원의 일부 기업 및 근로자의 손실과 고통을 충분하게 배려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기술 혁신과 일자리 문제로 화제를 돌려 보자. 최근 들어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일자리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펠프스=일부 전문가가 로봇에 의한 자동화는 일자리를 크게 파괴하고 실업을 늘리게 돼 우리는 이제 공장 밖으로 나가 일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공장에 사람이 거의 필요 없게 된다는 것에 빗대어 야간 경비 한 명과 경비를 지켜 줄 개 한 마리뿐인 공장이 수두룩할 것이라는 반농담 조의 주장마저 한다. 나는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술 혁신은 항상 모든 노동생산성을 높였고, 그 결과 임금도 올라갔고 모든 생산요소의 가격이 올라갔다. 앞으로도 기술 혁신에 따라 노동생산성은 빠르게 상승하고 임금도 계속 올라가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으나 나도 일의 내용과 일자리 자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지금 시점에서 내놓을 수 없다. 적절한 교육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이 따라 준다면 전혀 성격이 다른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공=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를 비롯한 정부 최고위층의 자문에 응했다. 중국 경제를 아직도 낙관적으로 보나.

▶펠프스=2년 전 이 자리에서 대담하면서 중국 경제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설득력 있는 대답을 못하겠다. 솔직히 말해 현재 중국은 일부 적절치 않은 제도와 경제구조 탓에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계속해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많은 젊은이가 새로운 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경제적 활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의 기업가정신과 기업 혁신의 힘이 상당하지만 그것이 중국 경제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적 결함과 약점을 덮을 만큼 강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미국엔 에너지 넘치는 기업가 많아

▶사공=결국 중국 경제의 미래는 필요한 제도 개혁과 구조조정, 기술 혁신의 지속 여부에 달렸는데, 그 성패에 대한 결론은 아직도 내리기 힘들다는 말로 들린다. 미국 경제는 어떻게 보나.

▶펠프스=나도 미국 경제 내부에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미국의 기업가정신과 기술 혁신 능력을 믿는다. 실제 미국 경제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심각한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왕성한 기업가정신과 기술 혁신의 힘이 있었다. 미국에는 지금도 기업의 기술 혁신 노력이 왕성하고 새로운 기회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에너지 넘치는 기업가가 많다.

▶사공=하지만 당신은 그동안 정부의 간섭이 지나쳐 미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활력을 잃었다고 줄곧 주장해 왔지 않나.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아닌가.

▶펠프스=그렇다. 정부의 쓸데없는 규제와 간섭을 줄인다면 미국 경제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생산성이 1%에서 2%로 향상된다면 매 72년이 아닌 매 36년 만에 생산성은 두 배가 되니 그 차이는 대단한 것이다.

▶사공=복리(複利)의 무서운 힘이다. 낮은 성장률 차이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좁힐 수 없는 큰 격차를 가져온다. 현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남북한 경제 격차는 경제 성장은 복리의 게임임을 가장 잘 말해 주는 극적인 사례다.

정리=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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