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악동' 기업사냥꾼이 찍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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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계적 기업 사냥꾼인 미국의 칼 아이칸(사진)이 KT&G의 지분을 대량 매집해 놓고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재계는 노골적인 경영권 간섭으로 인수 기업 측과 빈번히 마찰을 빚어온 아이칸의 성향으로 미뤄, 이번 KT&G 지분 인수가 자칫 '제2의 소버린 사태'로 비화되는 것 아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케이먼아일랜드 소재 사모펀드인 아이칸 파트너스 마스터 펀드는 3일 공시를 통해 "경영 참여 목적으로 KT&G 지분 6.59%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아이칸 측이 지난해 9월 28일부터 올 1월 9일까지 장내 매수 방식으로 사들인 KT&G 주식은 총 1070여만 주에 달한다. 이로써 아이칸이 등기 임원으로 등재돼 있는 아이칸파트너스펀드는 중소기업은행(15.84%)과 프랭클린 뮤추얼어드바이저(7.14%)에 이어 KT&G의 3대 주주로 부상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아이칸 측이 지분 매수를 계기로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지분율 61%)과 연대해 본격적인 경영권 간섭이나 인수를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아이칸파트너스펀드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스틸파트너스의 요청에 따라 KT&G 주주총회에서 스틸파트너스 측 후보의 이사 선임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아이칸 측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해 말 KT&G에 대리인을 보내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증시 상장 또는 매각 ▶유휴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한 주가 부양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아이칸파트너스가 원하는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면 주총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표 대결로 맞서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이칸 측이 요구한 주가부양책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증권 정성훈 연구원은 "KT&G의 우호 지분이 많기 때문에 아이칸이 경영권에 직접 압력을 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경영 간섭 시도는 더욱 노골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아이칸 측이 요구한 KT&G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기업공개 및 부동산 매각 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자사주 소각 요구는 KT&G 측이 이미 수용 의사를 밝힌 만큼 당분간 양측 간에 큰 충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 칼 아이칸은=1936년생으로 프린스턴대를 졸업했다. '상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80년대부터 기업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친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다. 투기채권인 정크본드를 통해 부를 축적한 그는 85년 TWA항공사에 대한 적대적 M&A를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2000년에는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인 GM 지분을 사들이며 경영권을 위협했으며, 최근엔 타임워너 지분 3%를 사들여 경영진 개편을 시도하기도 했다.

표재용.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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