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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유출되면 … ” 헌재 회의실 도청 방지장치도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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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정미(55)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재판관 8명은 3일에도 사복 경찰의 근접 경호를 받으며 출근했다. 취재진의 질문엔 일절 답하지 않고 곧바로 집무실이 있는 헌재 청사 3·4층으로 올라갔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종 선고를 위한 세 번째 평의(評議)가 진행됐다. 회의는 정오 무렵에 끝났다. 3·1절 공휴일었던 1일을 제외하고 최종변론일(27일) 이후 매일 평의가 진행됐다.

재판관 8명 출근 땐 경찰이 경호 #식사도 청사에서 … 외부 접촉 끊어 #6일 또는 7일에 선고일 지정될 듯 #전문가 “재판관들 마음속엔 이미 … ”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평의에서 재판관들이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재판관들이 자유로운 토론 형식으로 논의를 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이번 탄핵심판의 경우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발언을 한 뒤 다른 재판관들이 각자의 소신이나 심증, 가치관에 따라 의견을 개진한다고 한다. 토론이 과열될 땐 주로 헌재소장(또는 권한대행)이 중재에 나선다고 한다. 과거에는 평의가 열리는 재판관 회의실에서 고성이 새어 나와 ‘심각한 상황’을 헌재 연구관들이 인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해 12월에 탄핵심판 사건이 접수되자 재판관 회의실 도·감청 방지시설을 최신형으로 교체했다. 또 층마다 청사 경호 인력들이 주요 출입구와 집무실을 겹겹이 지키고 있다. 재판관들도 스스로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식사도 재판소 안에서 해결한다. 헌재 관계자는 “정치적·역사적으로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에 결정에 대한 예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내용도 외부로 유출돼선 안 된다. 이번 주말에는 평의를 열지 않고 재판관들 각자가 그간 논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쟁점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짓는 선고일은 9일 또는 10일이 유력하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관측이다. 이날을 넘어가면 주말을 거쳐 곧바로 이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이 된다. 헌재는 그동안 이 권한대행의 퇴임일 전에 사건을 결론짓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재판부 7인 체제에서 나온 결정에 대해 대표성·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이 권한대행의 퇴임일에 선고일을 맞출지 모른다는 예측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 각 재판관들이 마음속으로 이미 탄핵 인용과 기각 중 하나를 사실상 선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헌재의 선고일 지정은 6일 또는 7일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선고일은 사흘 전에 예고됐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일각에선 “분열된 국론 봉합을 위해 인용, 기각 어느 경우든 재판부가 전원 합의 형태로 8대 0 만장일치 결정의 형식을 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선 인종차별로 인한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인종 분리 교육에 대한 판결을 할 때(1954년) 연방대법원이 사회 혼란을 우려해 소수 의견을 가진 재판관을 설득한 뒤 9대 0 만장일치 판결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헌재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에서도 소수 의견을 그대로 인정하고 공개해 왔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는 1명(김이수 재판관), 김영란법 합헌 결정 때는 2명(김창종·조용호 재판관), 간통죄 위헌 때도 2명(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이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평의(評議)

결정문 초안 작성에 앞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이 모여 사건 심리 결과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회의를 뜻한다. 평의 내용은 비공개가 원칙이며 기록관도 배석할 수 없다. 재판관들은 마지막 평의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투표를 하는데 이를 평결(評決)이라고 한다. 평결은 보통 가장 최근에 임용된 재판관부터 각자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해 서열 역순으로 진행된다.

윤호진·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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