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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임’ 안 끝났다는 33세 스키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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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알파인 월드컵 여자선수 최다 우승자인 린지 본은 실력에 비해 올림픽 메달운이 없었다. 2010 밴쿠버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1개씩을 따낸 게 전부다. [정선=박종근 기자]

스키 알파인 월드컵 여자선수 최다 우승자인 린지 본은 실력에 비해 올림픽 메달운이 없었다. 2010 밴쿠버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1개씩을 따낸 게 전부다. [정선=박종근 기자]

‘스키 여제’ 다웠다.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77차례 우승한 린지 본(33·여·미국)에겐 승수 추가 이상의 목표가 있었다. 2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남자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FIS를 설득 중”이라며 “내년 12월 안에 승인 받으면 좋겠다. 은퇴 전에 남자들과 경쟁할 기회가 꼭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 올림픽’ 평창 금메달 도전 #스키 월드컵 77승, 여자 선수 최다승 #“10승 더 올려 남·녀 통합 신기록 꿈 #정선 경기장 슬로프 퀄리티 높아”

본은 주 종목인 알파인 스키 활강에서 39회 우승한 것을 비롯해 여자선수 중 최다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스웨덴의 ‘스키 영웅’ 잉게마르 슈텐마르크(은퇴)의 남·녀 통합 최다승 기록(86승) 경신을 눈 앞에 뒀다. 내년 평창올림픽 개막 전까지 10승을 보태 신기록을 세우겠다는 그에게 남자대회 출전은 또 하나의 도전 과제이자 마지막 목표다.

눈부신 기록을 세우는 과정이 ‘꽃길’만은 아니었다.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끔찍한 사고와 재활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9~10시즌 월드컵 때 경기 도중 미끄러지며 왼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부상이 잇따랐다. 2013년엔 오른쪽 무릎 인대가 두 차례나 끊어졌고, 지난해 말에도 오른팔이 부러져 두 달간 쉬었다. 무적이지만 올림픽 금메달이 하나(2010년 밴쿠버 대회 활강) 뿐인 이유, 바로 부상 탓이다.

월드컵 출전 차 정선을 찾은 본은 ’트랙이 아름답고 설질도 괜찮았다. 평창 올림픽이 마지막이다.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월드컵 출전 차 정선을 찾은 본은 ’트랙이 아름답고 설질도 괜찮았다. 평창 올림픽이 마지막이다.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부상에서 복귀해 다시 슬로프에 오르면 무섭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본은 “공포심은 극복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고를 무릅쓰고 도전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활강 선수로서는 실격”이라고 대답했다. 치료와 재활의 고통을 견디는 힘은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달 3일 부러진 팔에 보호대를 감은 채 턱걸이 하는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그는 “수많은 지원 스태프와 팬들이 항상 나를 지켜본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알파인 스키 월드컵(4~5일·정선 알파인 경기장) 출전 차 한국을 찾은 본은 “평창올림픽 홍보대사 위촉식 이후 2년 만에 한국에 왔다. 아름다운 경치와 친절한 사람들이 점점 익숙해진다”며 웃었다. 그에게 평창은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활강) 종목 여자선수들은 대개 33살 전에 은퇴한다. 나 역시 현역 생활 막바지에 서 있다. 기왕이면 마지막 올림픽을 금메달로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경험한 정선 알파인 경기장 슬로프에 대해 그는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높았다 ”고 말했다.

본은 본지 단독인터뷰 직전 기자회견을 했다. 회견 도중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수호랑·반다비)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호랑이인 ‘수호랑’이 맘에 든다며 집어들었다. 전 남자친구인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를 떠올린 기자들이 크게 웃었지만 그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설명을 들은 뒤 박장대소했다. 한쪽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현 남자친구 케넌 스미스(36·미 프로풋볼 LA 램스 코치) 눈치를 살짝 살핀 그는 “(호랑이를 고른 건) 특별한 의도가 없었는데 즐거움을 줬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평창=송지훈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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