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출한 고증학자 추사의 면모 되살리는 것은 한국의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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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장대비가 내리던 1일 오후 도쿄 외곽 네리마(練馬)구의 다섯평 남짓한 단칸방.

후지쓰카 아키나오(94)는 한글 교습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선친을 따라 18년간을 보냈던 서울을 잊지 않고 있었다. "쉬엄쉬엄 이야기하세요"라는 부탁에도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추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털어놓았다."한국에서 건너온 추사의 유물이 한국에 되돌아가게 돼 유쾌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거듭했다.

-유물을 기증한 동기는.

"과천문화원에서 지난해 가을 '추사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생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관련 자료를 어떻게 보존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내겐 부인도 자식도 없다. 한국에서 특별자료실을 만든다고 하니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한국을 택한 이유는.

"작품의 존재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구요, 또 하나는 보존이다. 일본에 넘길 경우 국회도서관이나 대학연구소 정도가 될 거다. 그러나 그럴 경우 자료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 추사 관련 자료는 마땅히 한국에 보존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료 보존이 쉽진 않았을 텐데.

"1945년 3월 미군 폭격으로 선친이 원장으로 있던던 대동문화학원에 소장된 자료들이 대부분 소실됐다. 다행히 도쿄 네리마구의 집에 두었던 자료는 온전히 남았다."

-기증의 의의를 찾는다면.

"정치.외교 문제로 시끄럽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고차원적인 문화교류를 펼쳐야 한다. 3세기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가 '논어' '천자문'을 갖고 와 일본에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 그런 게 진정한 문화교류다. 이번 기증이 그런 교류를 재현할 수 있다면…."

-한국 학계에 거는 기대는.

"추사를 흔히 뛰어난 서예가로만 알지만 사실 그는 걸출한 고증학자였다. 그런 그의 면모를 되살려야 한다. 중국.한국.일본의 문화교류를 밝히는 각종 자료를 전달했으니 이제 한국에서 누구나 쉽게 연구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었으나 못다한 일이다."

고령.건강 탓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그는 최근의 양국 관계에 대한 답답함도 털어놨다.

"야스쿠니(靖國)로 양국이 시끄러운데, 전쟁으로 희생당한 이들과 희생을 강요한 이들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조선통신사를 되돌이켜 봐야 한다. 조선통신사의 '신(信)'은 통신을 한다는 게 아니라 신뢰를 나눈다는 의미다. 모든 문제는 문화교류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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