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참상 국제 이슈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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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 세계 대사관이 밀집한 미국 워싱턴 중심부 매사추세츠가 2209번지.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으로 쓰였던 4층 건물이 '북한 인권센터'로 탈바꿈했다. 시가 500만 달러(한 달 임대료는 7000~8000달러)에 이르는 이 건물을 사들여 북한 인권단체들에 통째로 무료 임대하기로 한 주인공은 데보라 파이크스(사진) 미국 교계연합회 사무총장.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고향인 텍사스주의 미들랜드에 기반을 둔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로, 취임 후 부시 대통령을 7~8차례나 면담했을 만큼 측근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수단 등 아프리카의 인권 신장에 주력해 왔으며,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이래 북한 인권에 큰 관심을 표명해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이 퇴임하기 전 북한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많은 교인이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인권센터 개소 기념 모임을 연 파이크스를 행사 직후 만났다.

-워싱턴에 북한 인권센터를 만든 이유는.

"미국 전역에서 활동 중인 여러 북한 인권단체에 워싱턴의 실제 모습을 보여줄 둥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인권센터 건립으로 인권단체들이 미 의회.행정부와 의사소통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또 정치인과 외교관이 이 센터를 보면 북한 주민의 참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건물을 공짜로 빌려준 배경은.

"미국의 수많은 풀뿌리 조직이 돈을 보탰다.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보통의 미국 사람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북한의 인권 개선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몇 개 단체를 수용할 생각인가.

"15개 정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링크.이지스 등이 이미 입주 신청을 했다. 3월에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부시 대통령과 가까운데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갖는 적개심은 어느 정도인가.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적개심을 갖고 있지 않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거친 말을 했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독재자들을 겨냥한 말에 비하면 수위가 높지 않다. 굶어 죽어가는 북한 어린이들을 가엾게 여겨 북한 지도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도 그렇고, 당신 같은 인권운동가도 속마음은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원하는 게 아닌가.

"(웃으며) 나는 김정일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 주변 사람들은 '독재자를 위해 웬 기도냐'고 말리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는 10년 넘게 북한을 통치하면서 합리적 사고 능력을 가진 인물임을 입증했다. 그는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고, 인권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알 것이다. 만일 김정일이 마음을 바꿔 주민들을 위하는 정치를 한다면 미국은 그를 포용할 것이다."

-인권센터 설립으로 워싱턴 정계에 북한 인권 문제가 이슈화될 것으로 보나.

"수단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 인권문제도 급물살을 탈 것이다. 인권센터는 우선 의회.행정부가 탈북자 수용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할 것이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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