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대충대충 입춘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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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는 사람치고 시샘 없는 사람은 드물다. 옆집 누구 네가 뭘 하면 조르르 따라하는 건 예사다. 누구 네가 간판을 손질하면 따라 손보고, 인테리어가 좋다고 하면 자기네 멀쩡한 장식도 뜯어고친다. 그뿐인가. 청국장 손님이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메뉴에 일단은 추가하고 봐야 직성이 풀린다. 맛은 나중이다.

입춘을 맞아 내거는 이른바 입춘첩도 한때는 시샘 대상이었다. 그저 남들이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니 따라 하는 것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입춘첩이 대목을 만난다.

문제는 예전과 달리 입춘첩을 직접 쓰는 곳도 드물거니와 입춘첩을 구하기도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게마다 붙이고는 싶은데 입춘첩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급기야 글 좀 쓴다는 필경사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만들어 낸 입춘첩이 날개 돋친 듯 팔려간다.

그러나 특색 있는 입춘첩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자로 잰 듯 인쇄 종이처럼 보인다. 금방 식상하게 됨은 물론이다. 원래 입춘첩은 새해를 맞아 복덕을 기리려는 정성으로 각 가정에서 직접 마련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주문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입춘첩을 몇 번이고 다시 써 정성스레 붙이는 것이 연례행사가 됐다. 전통은 쉽게 모방할 수 있어도 올바로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는 이치를 입춘첩이 새삼 가르치고 있다.

옛날 속담에 '가게 기둥에 입춘이라'는 말이 있다. 격에 맞지 않는 것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봄이 오더라도 누구나 봄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입춘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봄은 긴 겨울을 기다리고 애써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이혁진 (52.서울 낙원동)

◆ 2월 10일자 소재는 '방학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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