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비자금 '+α' 터질 게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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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0년 6월 현대의 대북 송금 의혹사건이 결국 당시 여권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발전됐다.

4.13 총선이 있던 그 무렵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수백억원대의 자금이 현대로부터 건너갔음이 11일 공개된 것이다.

현대 측이 당시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뿐 아니라 權씨를 포함한 여권 인사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설은 그동안 정치권 등에서 은밀히 돌아다녔다. 이날 權씨의 긴급체포로 그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대검이 지난달 초 대북 송금 특검팀으로부터 관련자료를 넘겨받아 수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2000년 4월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양도성 예금증서 1백50억원어치를 건넸다는 부분에 수사가 집중됐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현대 측의 추가 비자금이 조성됐음이 드러났고, 權씨의 혐의도 포착됐다.

대검 측은 이날 "이미 이달 초부터 權씨의 소재 파악을 해왔다"고 말해 상당 기간 혐의를 확인해왔음을 밝혔다. 특검팀 관계자도 "수사 과정에서 1백50억원 이외에 추가로 비자금을 조성한 흔적과 다른 인사들에게 돈이 흘러간 의혹들이 드러났었지만 남북 정상회담 관련 사항으로 수사 대상을 제한한 특검법의 한계 때문에 朴씨 관련 부분에 수사를 집중했었다"고 전했다.

검찰 수사의 칼은 權씨의 사법처리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민주당의 상임고문으로 총선 후보 공천과 자금 지원을 좌지우지했던 權씨, 그리고 당 요직을 맡고 있던 또다른 실세들에 대한 의혹 등도 제기돼 있는 상태다.

權씨에게 돈이 전달된 시기는 총선 직전이며 액수는 4백억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여권에 있던 한 인사는 "민주당 후보 중 휴대전화 하나와 지갑에 단돈 7만8천원만 갖고 당선된 사람도 있었다. 한 후보당수십억원은 족히 들어갈 선거자금을 누가 다 대줬겠느냐"고 말해 權씨가 집행한 돈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주목되는 건 그 돈 역시 1백50억원 세탁 혐의를 받으며 미국에 도피 중인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씨를 거쳐 세탁이 됐다는 설이다. 옛 여권이 대북 사업 보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빌미로 현대의 돈을 퍼가다시피했고, 김영완씨가 그 흐름을 감추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심지어 김영완씨의 해외 도피를 옛 여권이 기획한 것이란 추측까지도 나온다.

金씨와 權씨의 관계는 權씨가 金씨 소유였던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에서 살았던 사실, 그리고 金씨집에 權씨가 전직 장관 K씨와 함께 초대받았다는 전언(본지 6월 28일자 1,3면)에서 나타나 있다.

결국 대북 송금 의혹사건은 당초 제기된 세가지의 수사 초점이 모두 드러났다.

하나는 현대가 북한에 보낸 돈이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성이 있다는 부분, 둘째는 청와대.국정원 등 정부 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대목이다. 이 두 부분은 특검 수사를 통해 실상이 드러났다.

그리고 셋째 핵심인 당시 여권의 정치자금 조성 부분이 밝혀진 것이다. 이 부분은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옛 여권 수뇌부가 강조한 '통치행위론'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어서 그만큼 더 큰 파문을 예고한다.

강주안.이수기 기자

◆ 긴급 체포=형사소송법에 따라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의심되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달아날 우려가 있을 때 영장 없이 체포하는 행위. 체포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피의자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하거나 석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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