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 영욕 교차한 40년 정치인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DJ의 분신''DJ정권의 실세' '동교동계의 맏형'.

권노갑(權魯甲)전 민주당 고문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만큼 DJ(김대중 전 대통령)정권과 동교동계에서 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DJ의 비서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후 그의 40년 정치인생은 'DJ 대통령 만들기'로 점철됐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제목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삶이 아름답다')처럼 DJ의 버팀목을 자처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정치역정은 영욕이 교차하는 풍운을 겪었다.

그는 1997년 2월 한보그룹 회장이던 정태수(鄭泰守)씨에게서 2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대선을 앞둔 시기에 그의 구속은 야당 대선 주자이던 DJ에 적잖은 타격이었다.

97년 대선에서 DJ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는 영어의 몸에서 풀려났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동안 일본에 머물러야 했다. 그는 98년 8.15특사로 사면 복권된 뒤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고문으로 정계에 복귀한다. 복귀 후 그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2000년 4월 총선까지 부동의 2인자로 여권 전반의 인사와 자금 분배를 좌지우지했다.

그런 權씨에게 이번엔 권력 내부의 견제가 발목을 잡았다. 2000년 민주당 창당과 4.13 총선을 계기로 정치 전면에 나서려던 그의 꿈은 여론 악화를 우려한 DJ의 만류로 좌절됐다. 그는 총선 출마의 꿈을 접은 채 낙선.낙천 의원들을 다독이는 역할과 외부인사 영입 등을 막후에서 지휘했다. 그러나 그해 연말 정동영(鄭東泳)의원 등 이른바 쇄신파 의원들에 의해 2선 후퇴 압력을 받으면서 최고위원직마저 버린다.

이후 이인제 의원을 대선 후보로 밀면서 '킹 메이커'로의 변신을 시도했으나 '노무현 돌풍'으로 재기의 발판을 잃었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엔 MCI코리아 진승현 대표에게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다시 수감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가 그해 8월 당뇨병 등 지병 때문에 구속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최근 權씨는 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명예 회복을 명분으로 정치 재개를 모색한 것으로 알려진다. 항소심 판결 직후 동교동으로 DJ를 찾아 큰절을 하면서 "하늘에 정의와 양심이 있어 이 결과가 나왔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이번 긴급체포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정치인 주머니는 정거장"이라는 정치자금관을 가지고 있던 權씨의 처지는 '정치무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