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작업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0호 22면

겨울비 내리는 늦은 밤, 열린 창가로 스며드는 바람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남쪽 어느 지방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도 있고, 제주에는 유채꽃도 만발했다지만, 파주의 봄은 멀기만 하다. 한 해를 살아온, 시골 내음을 그림에 담고 정리해 온 나의 작업실. 한동안 멍하니 빗소리에 빠져 앉아 있다. 문득 야보선사의 글 하나 뒤적거려 다시금 읽어 본다.

산당의조용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하고 고요하여 모두가 자연 그대로다.
어찌 된 일인지 서쪽 바람에 임야가 움직이더니
외기러기 높은 하늘에서 구슬피 우는구나
-『금강경오가해』

하루를 더 살면 하루를 더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작업실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 얄팍한 자신감이 나는 좋다. 이내 작업실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비가 잦아들면 산들산들 봄소식도 전해 오면 좋겠다.

도시남자 이장희, 전원 살다 <23>

이장희 :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저자. 오랫동안 동경해 온 전원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과 파주를 오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