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졸부들의 1500만원짜리 월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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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추석에 먹는 우리의 송편쯤에 해당하는 중국 음식으로 월병(月餠)이란 게 있다. 대개 속에 단팥 등을 넣은 뒤 약과 모양으로 틀에 넣어 구워내는 월병은 추석 무렵 가족이나 이웃과 정을 나누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그처럼 소박한 마음을 담아 추석에 정을 나누던 음식인 월병이 요즘 중국 사회에서 묘한 물건으로 변질되고 있다. 전통 먹거리에 지나지 않던 월병이 최근 들어 점점 비싸지거나 각종 고급 전자제품을 끼워 넣은 뇌물로 둔갑하더니 이젠 아예 초호화 사치품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北京) 인근의 톈진(天津)시에 등장한 월병 한 세트의 가격은 자그마치 9만9천9백99위안. 한국 돈으로 무려 1천5백만원이다.

내용은 뭘까. 월병 7개는 식용이고 나머지 하나는 순금으로 만든 월병이다. 먹는 월병은 미국산 고급 수입 밀가루로 껍질을 만들고 속도 고급화해 단팥 대신 남아프리카산 전복과 최고급 샥스핀, 제비집을 넣었다. 역시 최고급 목재인 홍목(紅木)으로 곽을 만들고 월병에도 식용 금박을 둘렀다. 재료가 대부분 수입품인데도 턱하니 '순금(純金) 중화지존(中華至尊) 보름달'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다.

9만9천9백99위안짜리 외에 8만8천8백88위안(약 1천3백33만원)짜리, 6만6천6백66원(약 9백99만9천원) 등 다양한 가격대가 있지만 모두 월병이라고 보기엔 턱없이 비싼 호화품들이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인 9(장수)와 8(부귀).6(만사형통) 을 월병값에 붙여놔 중국식 상술이 묻어나기도 한다.

먹지 못하는 순은(純銀)으로 장식품 형태의 월병을 만들어 내놓은 것도 있다. 순은 1㎏로 만들었다는 장식용 월병의 가격은 6천9백위안(약 1백3만원). 추석을 앞둔 중국에 바야흐로 '호화 월병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소박한 정성은 사라지고 호화 선물용 월병이 등장하는 데 대한 중국 사회의 우려도 깊어진다. 호화 월병이 부를 과시하려는 졸부들의 속물 근성과 관료의 부정부패가 뒤섞여 등장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중국 경제의 성장 이면에 존재하는, 좀체 없어지지 않는 그늘이다.

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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