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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후드티 위에 저고리...불편함 벗고 개성을 입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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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한복 입는 젊은층

한복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세대를 짐작할 수 있다. 결혼식이나 생신 잔치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다면 기성세대일 가능성이 크다. 중장년층에게는 한복이 특별한 행사에 입는 옷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한복이 평소 입는 옷으로 대접받고 있다. 서울 삼청동이나 홍대 앞에 가면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들이 올리는 ‘한복 입고 ㅇㅇ하기’ 제목의 사진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10~20대층을 파고 든 ‘일상에서 한복 입기’ 현상을 들여다봤다. 더불어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스타일 방법도 소개한다.

‘여백, 기로에’는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남성용 수트를 선보였다.(왼쪽) ‘시지엔 이’의 한복 선을 살린 바지와 랩스타일 재킷.

‘여백, 기로에’는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남성용 수트를 선보였다.(왼쪽) ‘시지엔 이’의 한복 선을 살린 바지와 랩스타일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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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영현(22ㆍ연세대 경영학과)씨는 학교에서 한복 매니어로 유명하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기 중에는 거의 매일 한복을 입고 등교했다. 일주일에 많게는 4~5회쯤 입고, 요즘 같이 추운 겨울에도 최소 2~3회는 한복을 입는다. 수업 들을 때나 동아리 활동할 때, 술자리와 데이트 등 시간과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이씨는 “고교 때까지는 신한복(현대식으로 디자인한 한복)을 자주 접하지 못했는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 인사동에서 우연히 허리치마를 사 입으면서 한복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KAIST에 재학중인 함창수(22·산업디자인학과)씨도 한복을 가까이 하는 편이다. 한 달에 2~3번 정도는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한복을 입고 일상생활을 한다. 함씨는 한복을 일상복과 믹스매치해서 입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 그는 “기분이 내키는 날 한복을 꺼내 입는다”며 “한복은 낯설거나 특별한 옷이 아니라 멋지게 스타일링하고 싶을 때 입는 옷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씨는 한복을 입고 댄스 동아리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에 슬쩍 한복을 끼워 넣는 식으로 주변에 한복을 알리고 싶어서다.

이영현씨와 함창수씨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산하 한복진흥센터가 진행하는 ‘오늘은 한복’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한복이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에 정착해 대중화되는 것을 목표로 기획됐다.

한복을 사랑하는 이유

함창수 씨는 후드티 위에 ‘리슬’의 데님 저고리와 데님 사폭바지를 입었다.(왼쪽) 이영현 씨는 ‘유현화 한복’의 플라워 저고리와 리넨 허리 치마를 입었다.

함창수 씨는 후드티 위에 ‘리슬’의 데님 저고리와 데님 사폭바지를 입었다.(왼쪽) 이영현 씨는 ‘유현화 한복’의 플라워 저고리와 리넨 허리 치마를 입었다.

한복을 입고 생활하면서 한복 사랑은 더욱 커졌다. 이씨는 “몸 라인을 아름답게 표현해주는 게 한복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색감도 곱고 다채로워 예쁘다”고 말했다. 함씨는 “많은 분들이 한복을 입기 불편하다고 생각하는데, 품이 넉넉하고 여유 공간이 있어서 오히려 활동하기 편리하다”며 “한복 깃과 고름은 다른 옷에는 없는 장식이라 스타일 포인트가 된다”고 말했다.

놀이처럼 시작된 한복 입기는 이젠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이씨는 “처음에는 특이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은 ‘예쁘다’ ‘어디서 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신한복 시장이 부쩍 커진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자 한복을 부담 없이 예쁘게 입을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고 있었다. 실천 제1원칙은 한복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함씨는 “한복도 결국 옷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전통 의상, 명절에만 입는 불편한 옷, 예의를 갖춰야 하는 옷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한복 입는 걸 주저하는 것 같아요. 그냥 일상복이라고 생각하고 옷장 속 옷들과 믹스매치해 보세요. 예를 들어 저는 후드티 위에 저고리를 입거나, 한복 바지 대신 청바지를 입기도 합니다. 서양 의복도 이런 과정을 거쳐 변해오지 않았을까요.”

이씨는 “신한복은 일상복과 믹스매치 해서 입기 편하고, 심리적ㆍ금전적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왠지 한복을 입으면 구두도, 액세서리도, 곁들이는 일상복도 더 예쁘고 장식적인 것으로 골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저도 처음 산 허리치마에는 분홍색 레이스 블라우스를 매치하고 하이힐을 신었는데 이제는 허리치마에 스니커즈를 신어요. 스냅백이나 볼캡을 쓰고, 저고리에 후드 집업을 걸치거나 장저고리에 청바지를 입어 보세요.”

이처럼 한복의 대중화가 확산됨에 따라 신한복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입는 한복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복 디자이너 황이슬의 ‘리슬’, 김혜진의 ‘혜윰한복’, 이서정의 ‘시지엔 이’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한복 전문 브랜드들도 젊은층을 겨냥한 브랜드를 새로 내놓았다. ‘유현화 한복’‘이향 한복’, 박선옥의 ‘여백, 기로에’ 등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한복 판매가 증가하는 추세다.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의 2016년 상반기 한복(전통ㆍ생활)과 한복 신발(가죽신·꽃신)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33%, 26% 늘었다.

한복 예쁘게 입으려면

카페에서도 한복이 어색하지 않다.‘혜윰한복’의 퍼플 코트(왼쪽),‘리슬’의 저고리 가죽 재킷과 데님 원피스.

카페에서도 한복이 어색하지 않다.‘혜윰한복’의 퍼플 코트(왼쪽),‘리슬’의 저고리 가죽 재킷과 데님 원피스.

‘오늘은 한복’ 캠페인은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거리에서 한복 입은 사람을 만나는 게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도록 하는 게 목표다. 한복진흥센터 임현정 부장은 “전통한복 뿐 아니라 일상복과 쉽게 믹스매치 할 수 있는 다양한 한복 스타일을 소개함으로써 일상에서도 한복을 편안하고 멋스럽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많은 이들이 한복을 가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복이 보다 일상적으로 거리에 나오기 위해서는 현대 의상과 믹스매치 하는 게 지름길이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소현씨는 “한복이라는 생각은 떨쳐버리고 일반 옷을 입는다 생각하고 마음껏 입어보고 여러 옷들과 매치하다보면 자연스러운 스타일링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원피스 디자인의 데님 소재 신한복 위에 가죽 라이더 재킷을 입는 식이다. 박 스타일리스트는 “라이더 재킷과 데님은 예부터 잘 어울리는 짝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치마 길이는 발목 위에 끌리지 않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라이더 재킷 길이가 짧고 핏이 슬림하면 라인이 더 예쁘게 살아난다. 슈즈는 캐주얼한 데님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게 좋다. ‘리슬’에서는 라이더 재킷과 한복 데님 원피스 등을 내놓았다.

한복을 입을 때 가장 큰 걱정은 너무 차려입은 듯 보이거나 성숙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스니커즈나 드라이빙 슈즈 같이 편안한 느낌의 단화를 선택하면 문제가 쉽게 풀린다. 신발을 고를 때는 한복에 들어있는 색 중 하나와 맞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오렌지와 레몬색처럼 서로 어울리는 색이나 비슷한 색의 톤온톤으로 맞추면 더 세련돼 보인다. 치마와 저고리를 입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미니백을 크로스로 매면 잘 어울린다. 데님은 한복을 젊게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소재다. ‘리슬’이 데님으로 만든 사폭(邪幅·남자 한복 바지에서 허리에 잇대어 붙이는 네 쪽의 헝겊) 바지와 셔츠 저고리는 후드티와 레이어링하면 기존의 한복 개념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디자이너 박선옥의 브랜드 ‘여백, 기로에’의 폴리에스터 소재 남성용 한복 슈트는 넉넉한 어깨선만이 한복의 흔적을 보여줄 뿐 현대적인 오피스룩으로 손색이 없다. 디자이너 이서정의 ‘시지엔 이’는 한복 선을 살린 바지와 랩 스타일 재킷을 여성용 오피스룩으로 제안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한복진흥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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