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스프링캠프' 이승엽은 "힘들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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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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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9박20일 남았네요. 아,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승엽(41·삼성)에게 마지막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소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20일 프로야구 삼성의 전지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 아카마 구장에서 만난 이승엽은 "힘든 마음에 한국에 돌아갈 날짜를 계산해봤다"며 웃었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야구를 그만둔다. 공식 은퇴를 선언했으니 이번이 마지막 스프링캠프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실감나느냐는 질문에는 "(관심을 많이 받아) 수퍼스타가 된 기분"이라고 답했다. 

하루 동안 그의 훈련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가 왜 힘든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는 20대 초반 선수들처럼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정해놓은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뒤에도 이승엽은 나머지 타격훈련(특타) 때 배팅 게이지에 다시 들어갔다.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다. 그는 특타를 소화한 뒤 10분 정도 배트를 더 휘둘렀다. 그는 "훈련량을 늘렸는데 좋아진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잠시 짬이 날 땐 배팅 훈련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공을 던져 줬다. 특히 구자욱과 짝을 이뤄 배팅 훈련할 때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해야한다. 스물 두살 차이가 나는 최지광(19)에게 "내가 한창 혼나면서 야구할 때 넌 태어났구나"라며 농담도 건넨다. 이날 팀에 합류한지 3일된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31)와는 배팅 훈련 순서를 놓고 가위바위보도 했다. 이승엽은 "이기면 먼저 칠 수 있어 5분은 더 쉴 수 있다. 러프가 (돌아가는) 흐름을 잘 아는지 지더라"며 웃었다. 

이승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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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은 대충 끝낼 수 없어서 더 힘들다. 지난해 말 이승엽은 한국에서 개인훈련을 하면서 타격 폼에 변화를 줬다. 홈런을 더 많이 치기 위해 한창 때인 20대 시절 타격 폼으로 돌아간 것이다. 테이크백 동작을 크게 하고, 손의 위치를 바꾸는 훈련을 했다. 그런데 전성기에 비해 힘이 떨어지다 보니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지난해처럼 정확하게 공을 때리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오키나와 훈련에선 가벼운 배트를 쓰면서 배트 스피드를 올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은퇴를 앞둔 이승엽에게 마지막 홈런왕에 오르길 기대하는 팬들도 있다. 지난해 이승엽은 홈런 27개(공동 8위)를 쳤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은퇴를 선언한 지난해 38홈런을 기록한 데이비드 오티즈(전 보스턴)를 보면 불가능한 목표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승엽은 손사레부터 쳤다. 그러면서 "홈런 30개정도는 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야구가 정말 쉬우면서도 또 어렵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배트 중심에 공이 맞으면 담장을 넘길 수 있는데, 3경기에 한 번만 배트 중심에 맞춰도 40개는 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또 다르다. 홈런 30개도 쉬운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절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야구장에서만큼은 절대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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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올해 목표는 오히려 소박해보였다. 그는 "개막 시작 때부터 끝까지 1군 경기에서 뛰고 싶다. 그게 목표다"고 했다. 이승엽은 "2군에 한 번이라도 내려가면 나에게 남은 경기는 134경기로 줄어든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나에게는 소중하다. 부상없이 많은 경기를 뛰고 싶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시절 얘기를 꺼내자 "생각하기도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신적 압박이 대단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무릎이 좋지 않았다. 2009년 WBC 때는 몸살로 고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아시다시피...컨디션이 너무 안좋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결정적인 순간 꼭 해결사 노릇을 했다. 그는 "주위의 시선을 원래 신경쓰는 성격이라 더 그랬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팀이 힘들어서 그도 힘들었다. 삼성은 지난해 9위를 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최형우(KIA)·차우찬(LG) 등 투타 주축이 빠진 올해는 더 힘들 거란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이승엽는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가 안된다고 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리란 보장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삼성을 '미완'의 팀이라고 정의했다. 이승엽은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팀이다. 젊은 선수들이 똘똘 뭉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다.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간다면 더 좋은 성적도 낼 수 있다. 그러면 나도 맘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자신의 은퇴식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팀에 되려 방해가 된다면 은퇴식을 하지 않고 그만 둘 수도 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기획 중인 은퇴 투어는 팬들에게 '간단한 목례' 정도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다. 그는 "마흔 한살까지 뛰고 적절한 시기에 은퇴를 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오키나와=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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