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스타트업 규제프리’ 도입 어떨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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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 준벤처기업협회 회장㈜쏠리드 대표이사

정 준벤처기업협회 회장㈜쏠리드 대표이사

지난해 초,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스타트업 인디아’ 선포식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스타트업에 대한 소득세 면제, 스타트업 투자이익에 대한 비과세 등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당일 행사장에 참석했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인도 스타트업에 대한 1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재확인했고, 미국ㆍ중국의 거대 IT기업들도 속속 인도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벤처활성화 정책 오락가락 #유망벤처들 미국, 중국, 인도로 떠나 #창업 지원할 파격적인 제도 마련 #글로벌 벤처 모일 서식지 만들어야

다른 세계 각국도 앞다투어 창업벤처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과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소위 ‘스타트업 선진국’ 지위를 굳힌 미국, 중국, 영국뿐만 아니라, 핀란드ㆍ아일랜드ㆍ칠레 등도 스타트업의 허브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의 시대에, 기술기반의 스타트업 육성과 벤처생태계의 조성이 신규 일자리 창출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유일무이한 대안이라는 점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상식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몇 년간 창업ㆍ벤처 활성화에 노력했다.벤처투자 규모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고 현장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청년들의 창업 열기가 모처럼 불붙고 있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기업들을 많이 키워낼 시장환경을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또한 글로벌 인재와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느냐는 시각에서도 해외 경쟁국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빠르다. 객관적으로 이미 뒤처져 버린 레이스에서 선두권을 쫓아가려면 그들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지난 몇 년, 벤처기업협회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 중의 하나는, 정부의 창업과 벤처육성 정책은 산업육성을 담당하는 1~2개 정부 부처 만의 노력으로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벤처 M&A 활성화가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느닷없이 벤처M&A 양도세율을 대기업 수준으로 환원시키는 조치가 취해진다. 이렇게 해서는 그간 여러 차례 발표했던 각종 벤처정책들이 근본적인 시장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각종 규제당국, 세제당국, 금융당국도 창업ㆍ벤처활성화라는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부분적으로 양보한다는 소극적 자세를 버리고, 이제는 꺼져가는 대한민국호의 새로운 성장엔진을 직접 만들어낼 의무가 주어진 주체라는 적극적인 인식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점이다.

최근 각종 복잡한 규정들과 규제로 인해 많은 국내의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국의 현 법령 하에서는 사업 자체가 각종 규제로 인해 위법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 이후 일정기간, 일정 규모까지는 각종 규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스타트업 규제프리 제도’를 우리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와 같은 파격적인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국내 뿐만 아니라 유망한 글로벌 스타트업들과 자본이 몰려들 수 있는 최적화된 벤처 서식지(habitat)로 만들어야 한다.

구글, 아마존 등 채 스무살도 되지 않은 혁신기업이 이미 미국 기업랭킹 5위안에 포진돼 있다. 시장의 판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으며,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10년 이상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한민국 창업벤처들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요즈음 부쩍 100여 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지금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내부적으로도 희망적인 지표를 찾기 힘들다. 이런 문제들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안이 창업ㆍ벤처 육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여권, 야권을 막론하고 대선 공약으로 창업, 벤처활성화를 한 목소리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이제는 창업벤처 육성을 위한 우리 사회의 사생 결단의 각오와 과감하고 일관된 실천이 남아있을 뿐이다.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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