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원화절상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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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통상정책은 겉보기와는 달리 더욱 더 융통성을 잃어가는것 같다. 자기 나라 시장은 문을 닫으면서 외국시장은 활짝 열라고 요구하고 있는게 요즈음 미국의 통상정책이다.
의회는 의회대로 보호주의입법을 서두르고 있으며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수입규제책을 강화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자유무역의 파수꾼으로 세계 무역질서를 유지, 관리하는데 선봉장이었다.
이제 미국은 자기나라 경제를 위해서라면 세계무역질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미국이 이렇게 변해가는 만큼 우리의 입장이 어려워지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한미통상관계는 줄곧 우호적이었고 상호이익이 되게 발전해 왔으나 지난해부터 이상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한국이 대미거래에서 흑자를 보이기 시작하자 미국측은 체면 불구하고 한국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전심전력 하느라고 하고 있는데도 미국측은 막무가내로 무리하게 계속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동안 우리가 펴온 한미통상균형화 노력도 그만하면 성의를 보인 셈이다. 우리는 힘에 겨운데도 미국에서 많은 상품을 사왔으며 미국이 요구한 것이면 거의 다 수입을 개방하고 관세율까지 내려주었다. 그리고 환율조정의 성의도 최대한 보여주고 있다. 미국시장이 우리에게 중요한만큼 흑자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다. 미국은 이런 우리의 성의를 못본체하고 대한요구를 무리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제임즈·베이커」미재무장관은 최근 서한을 보내 또 다시 한국정부의 환율운용이나 원화 절상폭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원화절상의 가속화를 요청했다. 그동안 미통상법301조 발동운운하며 압력을 넣어 한국의 생보시장 개방문제를 타결하더니 이번엔 원화절상 문제를 또 들고 나왔다.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올해들어서만도 18일 현재 6.9%나 평가절상 되어 우리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 정도의 절상폭은 우리의 최대 성의인 동시에 합리적 수준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무리한 요구만 거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는 지금 노사분규 후유증으로 어려운 판국이다. 미국까지 원화절상 가속은 물론이고 농산물·수산물·서비스시장의 개방압력을 계속 넣으면 우리는 내우외환의 지경에 빠지게 된다.
경제가 정상적일 때에도 경제압력은 유쾌하지 못한 법인데 어려울때 압력을 받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의 심정은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미국도 한국에 대해 숨돌릴 여유를 주면서 두나라간 현안들을 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대미감정이 나빠질지도 모른다.
우리 경제는 올해 겪었던 노사분규의 홍역도 있고 물가불안, 수출경쟁력 저하등 불확실성이 많은점을 감안할때 환율의 안정적 운용이 긴요하다고 보며 대미경제관계에서 좀 더 의연하도록 정부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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