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전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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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16년 9월15일 사상 최초의 탱크가 전장에 출현했다.
서부전선의 영독양군은 격전을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영국군 「머티모」대위가 지휘하는 태크 1대가 서서히 독일군 진지를 향해 들어왔다. 독일군은 놀라서 멍청한 채 포로가 되었다.
자신을 얻은 영국군은 그때까지 만든 49대의 탱크중 36대를 프랑스전선에 집중 투입했다. 독일군은 『악마가 왔다!』고 아우성치면서 궤멸하고 말았다.
탱크의 출현과 그 성공은 거기서 비롯됐다. 그때까지는 참호를 돌파할 수 있는 병기는 없었다.
하지만 「케네드·멕세이」의 『세계의 탱크』를 보면 인류는 이미 3천년전쯤 장갑전투차량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르유적의 벽화에는 동불이 끌고 무기를 가진 병사가 타고 모는 고대탱크를 그리고 있다. 병사는 동물껍질같은 것으로 방호하고 있었다.
「탱크」란 말이 처음 만들어진것도 영국이다. 특수한 공격무기를 만들어 놓고 보안상 적당한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어서였다.
처음엔 용기란 뜻의 「컨테이너」나 물통이란 뜻의 「시스턴」이 거론되었으나 짧고 의미가 뚜렷한단어가 좋다는 이유로 1915년 12월 「탱크」로 정해졌다.
물통모양의 쇳덩어리가 전쟁터의 신데렐라가 된 것은 그때부터다.
2차대전때는 가사라에서 도부룩과 엘 아라메인에 이르는 북아프리카사막지대에서 「로멜」이 지휘하는 추축군의 탱크 5백60대와「몽고메리」의 영국군 탱크 8백49대의 대탱크전이 있었다.
1943년11월 소련 크루스크의 전투는 6천대이상의 독·소군탱크가 벌인 사상 최대의 탱크전이었다. 그 전투의 패배로 「히틀러」의 야망은 좌절되었다.
한국형 「88전차」Kl탱크가 18일 첫선을 보였다. 우리 지형에 맞게 작고 가법지만 기동성과 방호력과 명중률이 북괴 탱크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서독의 주력탱크인 레오파르드-2나 미국의 M1에이브럼즈, 영국의 챌린저등이 65t규모인데 비해 51t으로 작은 감이 있지만 경박단소시대의 추세 속에서 첨단 병기과학기술의 개가다.
국산화율을 더욱 높인다면 안보의 자신감도 높아져 금상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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