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씨 희생이 한류 붐의 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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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짧지만 의롭게 삶을 마감했던 고 이수현(27)씨의 일대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이씨는 5년전 도쿄 신오쿠보 역에서 만취상태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한 뒤 열차에 깔려 운명을 달리했다.

이씨의 살신성인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고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가 빈소에 조문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씨의 5주기를 맞은 26일 오후 추모식을 겸한 영화 제작 발표회가 도쿄의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열렸다.

"이수현의 거룩한 희생은 오늘날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 붐의 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때까지 무관심했던 태도를 버리고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죠."

메가폰을 잡은 하나도 준지(花堂純次.50.사진) 감독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공통의 가치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영화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너를 잊지 않을거야'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지난해 말 이씨의 고향인 부산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하나도 감독을 비롯한 제작.출연진은 이씨의 묘를 참배하면서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공개오디션을 거친 배우 이태성이 주연을 맡고 정동환,이경진이 이수현씨의 부모역을 맡는다. 하나도 감독은 "배우들과 말도 통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다들 마음속에는 각별한 공감이 있어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전원의 의지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는 원만하지 못하지만 이번 작품은 양국의 우호를 다지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 될 겁니다. 일본인이 이씨의 삶에 얼마나 감동하고 있는지를 영화를 통해 꼭 한국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는 이씨의 추모사업에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들의 발의로 기획됐다. 자민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영화 제작에 보탬을 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촬영될 영화는 내년 봄 양국 동시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NHK 방송은 영화의 전 제작 과정을 특집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씨의 어머니 신윤찬씨는 "아들은 먼저 갔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부디 아들의 뜻을 잘 살리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는 사건 당시의 일본 외상이었던 다나카 마키코 의원이 참석했고 아소 다로 현 외상도 추모 메세지를 보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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