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주범은 현 정권 집권 후 감세정책 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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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현안 놓고 노 대통령과 대립=박 대표는 이날 사실상 모든 국정 현안에서 노 대통령과 완전한 대척점에 섰다. 양극화 해법, 사학법 개정 논란, 정부의 규모, 대북정책, 국민연금 개혁 등을 조목조목 거론하면서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우선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을 놓고 완전히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박 대표는 "양극화의 주범은 다름 아닌 현 정권"이라고 못박았다. 세계는 30년 만의 대호황을 맞았지만 현 정부는 3년 동안 경쟁국에 비해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와 미래 대비 차원에서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은 실패로 끝난 구시대 사회주의 유물이라는 논리를 내놨다. 특히 노 대통령이 "당장 증세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데 대해 "이런 말 바꾸기가 경제와 사회 혼란의 근원"이라고 공격했다. 감세론의 타당성 논란에 대해선 "집권 후 과감한 감세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으로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미 관계나 대북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통적 한.미 관계를 바탕으로 외교 현안을 풀어가야 한다"고 노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했다. 노 대통령은 전날 "북한의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의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사학법은 재개정만이 해결책"=박 대표는 이날 "사학법 문제는 재개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일단 장외투쟁 지속을 선택했다.

그러나 물밑 기류는 좀 다르다. 회견을 앞두고 당 내외에선 박 대표가 노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제안하거나 2월 임시국회에 전격 등원을 선언할 가능성이 거론됐었다. 장외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당내에 피로감이 확산된 데다 비판 여론이 설 연휴 기간 중 확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당내 소장파들은 박 대표와 당의 지지율 하락을 들어 '협상.투쟁 병행론'을 내놓고 있다. 기자회견문 작성 과정에선 당직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몇 차례의 엎치락뒤치락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 대표의 '외길 투쟁' 선언은 대여 협상을 위한 원론적 입장 표시일 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30일로 예정된 여야 원내대표 회담을 거론하며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기대감을 밝힌 게 근거로 꼽힌다. 또 재개정을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사학법은 원천무효"라던 당초 입장에서 다소 물러선 것이란 해석도 있다.

어쨌든 박 대표가 강조한 현 정부와의 정책 차별성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점차 부각될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노 대통령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옥석을 가려달라"고 호소했다. 노 대통령에겐 "어느 길이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길인지 따져 보자"고 물었다.

당초 마련된 박 대표의 기자회견문 초고엔 노무현 정부를 좌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영국 대처식 우파 개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번 기자회견문은 박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의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썼다.

박 대표의 현 정권에 대한 이념 공세는 가까운 시일 안에 좀 더 거칠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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