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기도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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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서른살 청년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 받은 날입니다"

2014년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각 조간 신문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다. 경기도교육청이 낸 광고였다. 당시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만 알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광고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광고는 화제가 됐고 그해 2월 14일은 초콜릿보다 안중근 의사가 더 회자가 됐다.

2월 14일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밸런타인데이에 가려져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처럼 역사적 사실이 가려지고 있어서다.

사실 그동안 2월 14일하면 대부분 연인에게 초콜릿과 선물을 주며 사랑을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를 떠올렸다.

밸런타인데이는 로마시대 군인들의 탈영을 막기 위해 황제였던 황제클라디우스 2세가 금혼령을 내린 것에 반발한 성 발렌티노가 사형을 당한 날을 기념한 것이 유래라는 말이 있다. 처음엔 편지 등을 주고받던 날이었는데 1840년대 영국에서 초콜릿을 함께 건네면서 초콜릿이 처음 등장했다.

이를 1950~1960년대 일본의 한 제과업체에서 "밸런타인데이는 연인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홍보했다. 이런 문화가 1990년대 국내로 유입되면서 초콜릿을 주고받는 현재의 밸런타인데이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념일처럼 내려오던 밸런타인데이는 상술과 만나면서 부담스러운 날이 됐다. 고가의 초콜릿이 등장한 데다 이제는 연인을 넘어 직장 동료와 친구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직장인 A씨(33·여)는 "직장 동료들에게 줄 초콜릿을 사려고 하는데 가격이 부담돼 개별적으로 줘야할지 큰 것을 하나 사서 나눠먹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실제로 초콜릿 가격은 2007년부터 9년 연속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초콜릿 가격이 전년보다 5.5% 상승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1년 전보다 무려 23.4% 올랐다. 이후에도 2009년 13.3%, 2010년 2.8%, 2011년 0.3%, 2012년 0.2%, 2013년 0.6% 각각 상승했다. 2014년에는 16.7%로 훌쩍 뛰어오른 뒤 2015년 4.6%, 작년 0.1% 각각 전년 대비 상승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의리초콜릿' '초콜릿 상납' 문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금지하는 회사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런 풍조에서 다시 안중근 의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인 데다 최근 인천의 한 경찰서가 안 의사의 손도장 사진을 테러예방 포스터에 사용한 사실이 알려져서다. 안 의사의 삶과 뜻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일부 네티즌들은 14일에 초콜릿을 주고 받기보단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있는 서울 남산공원이나 광주 중외공원, 경기 부천 안중근공원을 찾거나 안 의사의 허묘(가짜 묘)가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을 찾자고 제안한다.

윤원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2월 14일 못지않게 중요한 날이 안 의사가 사형을 당한 3월 26일"이라며 "밸런타인데이도 좋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안 의사 등 순국선열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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