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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츄 출몰하는 ‘포세권’ 뜨자 … 지자체 관광마케팅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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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구 김광석길에서 배지영씨가 아들과 함께 잡은 포켓몬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대구 김광석길에서 배지영씨가 아들과 함께 잡은 포켓몬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1일 오후 강원도 춘천 남이섬 곳곳에서 “잡았다!” 는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이다. 망나뇽·골덕·이상해꽃 등 희귀 포켓몬과 80여 개의 포켓스톱이 밀집해 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방문객이 늘면서 생긴 일이다. 정재우 남이섬 홍보마케팅 팀장은 “예전에는 하루 평균 방문객 5000~6000명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며 “포켓몬 성지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은 내국인 비율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보조 배터리 대여, 관광지 연계하고
개발사에 포켓스톱 설치 요청도

희귀 포켓몬 출몰지역 계속 바뀌어
“지자체, 게임 인기 식어도 계속될
장기적인 관광 프로그램 만들어야”

지난달 24일 국내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 포켓몬고가 인기를 끌면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포켓몬이 곳곳에 출몰하면서 지역 ‘포세권’(포켓스톱과 역세권을 합친 신조어)마다 사냥꾼들이 몰려들고 있다. 희귀 포켓몬이 자주 나온다고 알려진 곳들은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새로운 포켓몬을 찾아 지역 원정을 다니는 사람도 생겨나면서 경기침체와 겨울 비수기로 한산했던 관광지가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3시 인천시 남동구 중앙공원 내 인천예술회관 앞 광장에서도 100여 명이 포켓몬을 잡고 있었다. 동암역 광장 사거리에서 인천버스터미널까지 3.9㎞에 달하는 중앙공원은 무려 70개의 포켓스톱이 있다. 주변 포켓스톱까지 합치면 100여 개나 된다. 포켓몬이 많다보니 주말은 물론 평일 오후에도 서울이나 경기 부천·광명·시흥에서 포켓몬 포획자가 몰려온다. 중앙공원에서 붕어빵을 파는 차혜숙(59·여)씨는 “지금까진 손님이 있는 퇴근시간에 맞춰 장사를 했는데 요즘은 공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져 일찍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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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휴일을 제외하곤 사람이 거의 없던 경남 창원시 사림동 도립미술관 정문 앞도 포세권으로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고 있다. 어르신들이 몰려 ‘노인 쉼터’로 불렸던 충북 청주시 중앙공원도 요즘은 10~20대가 더 많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화원유원지는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찾는다. 부산시민공원은 하루 평균 7000여 명이던 방문객 수가 지난 4일 6만1448명을 돌파하는 등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포켓몬고 앱 개발사인 나이앤틱의 국내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포켓스톱을 추가해달라’는 자치단체 등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미 상당한 지역에 설치돼 있어 추가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포켓스톱을 추가하긴 어렵지만 출몰하는 포켓몬은 일정 주기로 바뀐다”고 덧붙였다.

지자체들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포세권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부산시설공단은 포켓몬고가 출시된 당일 오후 페이스북 계정에 부산시민공원에서 잡을 수 있는 포켓몬 30종을 올렸다. 휴대전화 배터리 소모가 빠른 게임 특성을 반영, 통신사와 제휴해 보조 배터리를 무료로 빌려주는 서비스도 할 계획이다. 세종시·부산 중구 등 지자체와 대학, 공공기관들도 포켓스톱 위치가 자세하게 표시된 지도를 인터넷 블로그 등에 올려 홍보하고 있다. 인천시와 강원 동해시, 경남 함양군, 충남 홍성군 등은 포켓몬 출몰지와 관광지 등을 연계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남 강진군 관계자는 “올해가 강진 방문의 해인데다 강진 시문학파기념관과 영랑생가 등에 희귀 포켓몬이 나온다고 알려진만큼 이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포켓몬고 마케팅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충기 경희대 교수(관광학과)는 “지금은 포켓몬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다른 나라들처럼 언제 꺾일지 모른다”며 “포켓몬만 잡고 돌아가는 것이 아닌 머물고 소비할 수 있는 장기적인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천·제주·대구=최모란·최충일·김정석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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