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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황우석 사태 확장판 보는 듯 … 당시 황 지지자들, 증거조작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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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진실, 광장의 진영에 갇히다

“요즘의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태의 확장판을 보는 것 같다.” 2005년 11월 황우석 당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을 처음 폭로한 류영준(45·사진)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의혹의 당사자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진실은 무조건 부정하는 사람들, 이로 인해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 갈등…. 류 교수의 눈에는 황우석 사태가 불거진 2005년의 모습과 2017년 현재의 모습은 닮은꼴이다.

논문 조작 첫 폭로했던 류영준 교수

류 교수는 당시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 게시판에 자신이 속한 황 전 교수 연구팀의 논문 조작, 비윤리적인 난자 채취 등을 고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연구팀 내에서 ‘리틀 황’이라 불리던 류 교수는 ‘배신자’가 됐다. 이후 황 전 교수의 지지자들로부터 ‘한국 과학의 미래를 망친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증거도 소용이 없었다. 황 전 교수 지지자들은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탄핵 정국’을 바라보는 류 교수의 마음은 복잡하다. 류 교수는 “지금도 과학계에서는 ‘정부 추천’ 하나에 수천억원대 연구가 제대로 된 계획서 하나 없이 통과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세월이 흘러도 황우석 사태를 일으킨 낡은 시스템은 변한 게 없고 사람들은 여전히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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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황우석 사태와 유사한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고 했다. 류 교수는 “처음에는 황 교수 지지자들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매일 좌절되는 믿음에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황우석, 박근혜 대통령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자신을 지탱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에서 윤리학·역사학과 연관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황우석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한 공부였다. 류 교수는 지금도 종종 일부 황 전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그래서 강원대 홈페이지 교수 소개 부분에는 그의 e메일 주소,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 않다. 류 교수는 “현실은 답답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오히려 구시대적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한영익·홍상지·윤정민·김민관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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