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류 빼곤 작황 평년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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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부들은 요즘 오랜만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한관 (3·75㎏)에 8백50∼8백60원하던 파가 요즘은 2천6백원정도는 줘야 상품을 구할 수 있고, 하다못해 오이 한개를 사더라도 어림잡아 1백60원을 호가하는게 예사라 오이무침 같은 반찬도 마음놓고 식탁에 올리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많은 알뜰 주부들이 일요일이면 즐겨찾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도 요즘 말린고추 20㎏ 한부대를 사려면 9만8천원정도는 줘야한다.
지난해 이맘때 5만8천원정도 하던 것에 비하면 1년새 절반 이상 값이 오른셈이다.
이른바 장바구니 물가다. 여기다 곧 추석(10월7일)이 다가오고 이어 김장철이 닥치므로 최근의 오이값· 파값· 고추값이 뛰는 것을 보면 빠듯한 가계부 생각에 막연한 걱정이 들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채소· 과일· 조미료등의 식료품값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별로 걱정할것이 못된다.
요즘에 갑자기 값이 뛰기 시작한 것들은 거개가 태풍과 수해로 물건이 잘 돌지않아 그렇지 앞으로 날씨만 괜찮아지면 곧 다시 고개를 숙일 것으로 보는게 옳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농산물들은 태풍과 집중호우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평년작 이상은 간다.
사과·배·감귤등의 과일들은 올해가 때마침 해거리상 많이 달리는 해라 최소한 지난해 만큼은 딸수 있고, 또 사과는 지난해 우리끼리 먹고 남아 1만t가량 수출까지 했으므로 만의 하나 값이 크게 뛰면 수출을 안하면 그만이다.
특히 마늘은 보기드문 대풍으로 비록 최근에 값이 조금 올랐다지만 지난해 이맘때 시세 5천2백원정도 (상품 한점)에 비하면 아직도 훨씬 싹 값이다 (하접에 3천9백원 정도).
무우·배추는 요즘 씨뿌리기가 끝날때라 작황은 두고보아야겠지만 이맘때부터 밭에다 달리 심을 작물이 없는데다 수해를 당한 밭까지도 무우· 배추를 심을 경우 자칫하면 지난해 같은 값 폭락사태가 날지도 모를 상황이다.
다만 파· 오이· 고추· 소금· 참깨만큼은 값이 싸지기를 기대할 수 없는 품목들이다.
파는 지난해 너무 많이 심어 운반비도 건지기 힘들자 밭두렁에 버리는 일이 있고난뒤 올해는 워낙 덜 심어 값이 오를 수밖에 없게 돼있고, 오이는 끝물에 수해가 덥쳐 역시 기본적으로 물건이 달리는 상태다.
고추도 비슷한 상황에서 일부 상인들의 산지 밭떼기 기미가 보여 파동을 걱정하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소금은 해마다 간척사업등으로 염전이 줄어드는데다 올해 날씨가 나빠 지난해보다 약 3만t정도 생산이 줄었고, 참깨도 해마다 공급이 달리는 위에 태풍까지 불어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소금은 내년 봄 된장· 간장 담글때까지의 수요에 맞춰 곧 호주와 동남아에서 10만∼15만t의 소금을 수입해올 것이고 참깨도 최근 이미 1천5백t을 수입해 왔으므로 값이 그리 크게 뛰지는 않을 것으로 보아도 좋다.
돼지고기· 닭고기등의 육류와 물오징어· 마른멸치등의 수산물은 많이 기르고 잘 잡혀 지난해보다 값이 내려가 있는 상태고, 다만 명태는 한미공동어획으로 잡아 들여오는 수입가가 올라 지난해보다 5∼10%정도 값이 오를 것으로 상인들은 보고있다.
날씨가 추워야 갈 되는 김은 지난겨울 이상난동으로 값이 두배가량 올라있으나 오는 11월말께부터 거두어 들일때 날씨만 따뜻하지 않으면 다시 값이 잡힐 수 있다.
정작 앞으로의 가계부가 걱정인 것은 위와같은 채소· 과일· 조미료·수산물·육류등이 아니라 노사분규로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공산품들이다.
올해 물가잡기가 큰 걱정인 정부가 벌써부터 공산품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는만큼 최소한 올 연말까지는 값들이 크게 오르지 않겠지만 인상억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만이 아니라 수입원자재가격이 오르고 돈이 물리고 있으며 선거철의 물가오름세 심리등 불안한 요인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할수없이 가격이 오를땐 오르더라도 최대한 물가오름세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소비자의 힘일 수밖에 없다.
값이 불안하니 쌀때 미리 사두어야겠다고 하기보다 가격정보에 항상 신경을써 값싼 곳을 찾아간다거나 하는 소비행태가 자리 잡을때 시장원리는 정직하게 작동해 값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값이 오르리라고 보이는 농작물들은 그 오른 값이 농민들의 소득으로 가지않고 중간상인들의 배를 불리는 일이 없도록 농민들 스스로가 농작물을 팔때 앞뒤를 잘 재어보아야 할때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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