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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시민의 교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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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2월 주제는 ‘시민의 교양’입니다. 국정 농단과 촛불 정국, 이어진 탄핵 국면으로 인해 출판계에서도 ‘국가’ ‘사회’ ‘권력’ ‘시민’의 키워드를 가진 책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내 삶의 주인공에 대해 물어봅니다.

훌륭한 국가 없이 행복한 시민의 삶도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돌베개
334쪽, 1만5000원

“이게 나라냐”는 울분이 자욱하다. 국가가 국민의 안위를 위해 존재한다는 건 이제 섣불리 수긍하기 힘들다. 그저 있는 자끼리,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맘껏 올리기 위한 도구로 국가를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더 설득력을 얻는 요즘이다.

글쓴이 유시민.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이 든다. 얼마나 재기발랄하게, 또한 통쾌하고 신랄하게 적들을 후벼파고 세태를 콕콕 찔렀을까. 이런 기대가 컸으면 자칫 실망할지도 모른다. 책은 예상보다 진중하다. 자극적 문구로 선동하기 보단 찬찬히 이론을 설파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국가론 교양서다.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국가를 규정한다. 첫째 홉스의 국가주의 국가론.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을 보호하는 ‘세속의 신’이다. 따라서 국가의 폭력은 언제나 정당하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념형 보수주의자의 시각이다. 다만 국가와 정부, 국가와 군주를 구분하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

두 번째는 로크와 밀의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국가주의 국가론에서 개인이 국가의 부속물에 불과했다면, 자유주의 국가론은 거꾸로 국가가 개인을 위해 복무한다. 국가란 세속의 신이 아니라 공공재, 이를테면 등대·도로·자연보호 같은 것들의 공급자로 규정한다. 이외에는 시민들 자신의 선택과 개인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시장에 맡기는 관점이다. 시장형 보수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의 도구적 국가론이다. 국가권력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한 힘일 뿐, 인민이 사회계약을 통해 세운 공동의 권력은 아니라는 태도다. 정치 무용론과 정치적 냉소주의를 낳을 수 있다.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사라지면서 설 자리를 잃었지만 국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유시민은 “민주공화국 주권자임에 자부심을 갖자”고 강조했다. 지난달 광화문 촛불집회. [중앙포토]

유시민은 “민주공화국 주권자임에 자부심을 갖자”고 강조했다. 지난달 광화문 촛불집회. [중앙포토]

저자는 이같은 원론적 분석을 토대로 국가는 과연 누가 지배해야 하는지, 애국심이란 무엇인지, 혁명과 개량 중 어떤 길을 택할지 등 각론적 문제로 침투해 들어간다. 후반부엔 진보 논객답게 진보정치의 현실을 냉철히 관조하면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연대를 역설한다.

책은 개정판이다. 6년전 초판이 나왔을 때 저자는 국민참여당 대표였던, 직업정치인이었다. 그때에 비해 “주장한 대목을 덜어내고, 객관적인 입장과 지식인의 시선을 강화시켰다”고 한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이건만 결코 현학적이지 않은 구체적 표현과 최근 한국 상황까지 가미한 생생함이 단숨에 읽게 만든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시민들의 훌륭한 삶도 없다”는 주제의식이 면면히 흐른다. 학술적 깊이와 대중적 호흡을 동시에 갖추었다. 다만 “자유권적 기본권을 보장한 건 1998년 2월부터였다. 역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2008년 이후 일부를 빼앗겼다” 등과 같은 일부 편향된 시각은 책의 전반적인 톤과 괴리를 보인다.

[S BOX] 굴곡진 인생, 어긋난 사랑…홉스·루소를 이해하는 키워드

책엔 토마스 홉스, 존 로크 등 교과서에 나올 법한 사상가가 다수 등장한다. 박제화된 철학적 사유만이 아니라 그들의 굴곡진 삶도 소개해 ‘왜 이런 철학이 도출될 수 있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부친 아래서 영재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공부기계’에 불과했던 청소년기를 거치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때 만난 헤리엇이라는 여인 덕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헤리엇은 친구의 아내이자 두 자녀의 엄마였다. 둘은 21년간 학문적 동반자로 지내다 헤리엇 남편이 사망한 후에야 혼인한다. 그것도 잠시, 7년후 헤리엇 또한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밀이 성 평등에 유독 관심을 쏟은 이유다.

한편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제네바에서 평범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그를 낳고 열흘만에 사망했다. 루소는 열 살에 집을 떠나 여러 도시를 떠돌며 귀족 서기로 일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혼은 세탁 일을 하던 하녀와 했고, 그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는 고아원에 맡겨야 했다. 하지만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치며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을 집요하게 파헤친 덕에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책을 내놓으며 학문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AI·IoT의 시대, 주눅든 인간들을 위한 기술은 없을까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영준·임태훈·
홍성욱 지음, 반비
376쪽, 1만7000원

기술 만능의 시대다. 신체 일부나 다름없어진 휴대전화를 보라. 인간이 기계를 움직이기보다 기계가 인간 속으로 들어왔다. 수술실·검사실 등 병원 공간은 인간을 기계처럼 다룬다. 패스트푸드는 음식을 조리 대신 조립한다. 기술 의존과 기계 중독이 흔해지면서 인간은 시간과 자유를 빼앗기고 사생활을 침범당하기 일쑤다.

기술 발달은 삶을 바꾼다. 기술과 기능은 인간의 리듬보다 더욱 고속으로 증식한다.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순간 삶이 지체되고 변화가 낯설어진다. 전기자동차·인공지능(AI)·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 등 고속질주하는 기술에 압도된다. 주인인 인간이 손님인 기계에 주눅든다.

기계비평가·문학평론가·화학생명공학교수인 지은이들은 인간이 기술에 소외감을 느끼게 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목표를 위해 복무하는 ‘기술 성장’을 넘어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기술 성숙’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문제는 기술이 사회와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자본과 국가의 영향력에 있고 시민을 위한 기술은 제한적이다. 지은이들은 이젠 기술이 인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때라고 지적한다.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일자리가 줄고 노동환경이 열악해지며 자원이 고갈되는 기술을 이젠 뛰어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중간기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대안기술, 소외된 이들을 돕는 대안기술의 3가지를 포괄하는 적정기술의 확산을 주장한다. 모래층과 미생물막을 이용해 적은 돈으로 깨끗한 식수를 만드는 기술, 페달을 밟아 물을 끌어올리는 무동력 워터펌프, 일본 규슈 대학과 히타치와 함께 개발 중인 원가 900원짜리 소변분석 암진단기 등 적정기술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변화를 위한 시도는 이미 점화됐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관습을 깨고 새판 짜는 일, 그게 바로 철학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음, 21세기북스
324쪽, 1만7000원

‘물 울타리를 둘렀다/울타리가 가장 낮다/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섬’ 전문이다. 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섬은 더 이상 난바다에 격리된 외딴 곳이 아니다. 바닷길로 서로 연결된다. 시인은 관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노래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예부터 내려오는 걸출한 사상가의 생각을 받아먹는 게 아니다. 그 사유 방식을 오늘에 맞게 새로 빚어내는 일이다. 그게 창의요, 창조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이 시대에 던지는 고언이다. 철학 수입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현실을 돌아보고, 주체적·독립적 사유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선도하는 생각의 힘을 내세운다. 요즘 유행어로 패스트 팔로(fast follower)를 넘어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다. 그런데 경제가 아닌 웬 철학? 삶의 질을, 국가의 높이를 결정하는 바탕이 철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동양고전 『장자(莊子)』에 나오는 얘기다. 장자의 친구인 혜자(惠子)가 위(魏)나라 왕에게서 큰 박이 열리는 씨를 얻어와 뒤뜰에 심었다. 얼마 뒤에 쌀을 다섯 섬이나 실을 수 있는 거대한 박이 열렸다. 혜자는 그 박이 쓸모가 없다며 깨뜨렸다. 물바가지나 호리병처럼 물을 담을 수 없어서다. 그때 장자가 나무랐다. “박이 그렇게 크다면 그것을 쪼개 배를 만들고 바다에 띄워놓고 놀면 되지 않는가.”

전복의 상상력이다. 이렇듯 철학은 관습을 부정하고 새 판을 짜는 행위다. 지은이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서양 사회의 발전과 철학의 관계를 짚으며 ‘새 부대, 새 생각’을 펼쳐 보인다. 서구 흉내내기에 바쁜 우리에 대한 채찍질이자 선진국 문턱에서 서성대는 한국의 비전 찾기다. 인문학 모임 건명원(建明苑) 강연을 묶은 구어체 문장이라 따라 읽기도 쉽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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