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이제 관객이 아니다.|구종서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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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프롬」은 현대사회가 그 병리에서 구출되려면 객석에 밀려나 있는 대중이 링으로 올라와 경기의 주체가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정치·산업분야에서의「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활성화다.
여기에 호응하듯 우리 나라에선 참여의 욕구가 끊임없이 분출하고 있다. 6월의 민주화 시위가「권력 참여」를 위한 궐기라면 8월의 노사분규는「분배 참여」에 대한 절규다.
우리의 참여시위와「프롬」의 참여 민주주의는 사회적 배경을 달리한다. 지금 우리는 공업화 도상단계에 와 있다.「프롬」의 이론은 공업화단계를 지나 풍요와 복리를 구가하는 후기공업사회 단계인 구미 대중사회의 산물이다.
과학기술과 경제의 고도화를 이룩한 구미 선진사회는 대중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복잡해졌다. 인간은 마치 피아노의 키와 같이 획일화된 많은 것 중의 하나인「부분적 존재」다. 그들은 철저한「마이 홈주의자」다. 시간만 되면 자기 차로 퇴근하여 가족 중심으로 쾌락을 찾는다. 그 결과 사회나 이웃과 단절된 소외상태에서 저속한 대중문화와 오락에 탐닉하는「레저 중심적 인간형」이 만들어졌다.
고립되고 무기력해진 대중은 정치의 주체성도 포기했다. 정치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스포츠처럼 관중석에서 바라보며 즐기는 구경거리일 뿐이다. 누가이기든 상관할 바도 아니다. 정치행사는 축제로 시종 된다.『소유냐 삶이냐』에서「프롬」은 이런 정치를 관객 민주주의」(spectator democracy)라고 불렀다. 그는 현대사회의 위기 요인을 주권자인 대중의 관중화에서 찾았다.「관객 민주주의에서 참여 민주주의로」라는 그의 주장은 거기서 나왔다.
우리 대중도 그 동안 객석에 밀려나 있었다. 선진사회에서와 같은 사회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를 바라보면서 마음놓고 응원조차 할 수 없는 「체제 외적 존재」였다. 관중석에서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주목받지 못한다. 떠들어대도 들어주지 않는다. 누구에 의해서 대표되거나 대변되지도 못했다. 그래서 87년의 한국은「뜨거운 여름」을 맞아야 했다. 프랑스 대혁명이래 민주주의 깃발은「자유」「평등」「박애」의 3색으로 그려져 봤다. 6월 시위의 목표가 자유라면 8월 분규의 목표는 평등이었다. 그 결과 지난 2개월 동안 사회 각분야의 상과 하, 체제의 안과 밖 사이의 거리가 크게 좁혀졌다. 관과 여의 일방통행식 관행도 희미해졌다.
야와 노의 거부권이 그런 대로 먹혀들었다. 여야의 개헌안 합의나 노사의 쟁의타결은 안협문화의 불모지에 돋아난 한 톨의 새싹이다. 이제 각분야에서 왜곡이 시정되고 균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대중지도자의 부상과 대중세력의 조직화다. 이것은 새로운 힘의 집중이자 개편이다. 6월 사태에 선 지식인·종교인 중심의 새로운 민간운동기구가 생겼다.8월 분규에선 근로자들의 단결기구가 결성됐다.
국민운동본부는 그 상징적인 힘만으로도 수십만명씩을 동원하고 지휘할 수 있었다. 민주노조들은 기업단위로 수천, 수만명씩 이끌고 나와 조직적인 행동을 벌였다. 그런 대로 목적도 달성했다. 모두가 젊고 이름 없는 엘리트들에 의해 선도됐다.
이런 힘의 센터들이 서로 연계되려고 한다. 참여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부상해 오는 저들을 주목해야 한다. 정치를 하든 않든 그들은 모든 사회문제에 큰 힘을 미칠 것이다.
새로 부상된 대중엘리트, 새로 조직된 대중세력의 참여 욕구를 어떻게 수용·관리하느냐는 것은 중요과제다. 이제 정치 지도력의 성패는 이 문제에서 가려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안정과 성장 여부도 거기에 달려 있다.
기층국민의 불만이 크고 개선될 전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대중이 극단적인 비관론에 빠지면 파시스트가 득세하기 쉽다. 제 1차 세계대전후 이탈리아와 독일이 이를 겪었다.
극도로 무관심해진 대중을 그대로 방치하면 50년대의 미국처럼 매카디즘이 판치게 된다. 「매카디」상원의원은 당시의 냉전화 분위기에 편승하여 많은 진보적 정치인·관리·장성을 친공분자로 몰아 면직 또는 기소케 했다. 대중의 견제가 없는 상태에서 권력 남용과 독선이 지배한 보수독재였다.
과도적 혼란기에 카리스마적 인물이 등장하여 노동세력과 결탁하면 페론이즘이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후 아르헨티나의「페론」은 쿠데타에 성공, 노동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수주의적 시책을 폈다. 나치즘과도 비슷한 중남미 특유의 민중주의 독재다.
나치즘·매카디즘·페론이즘은 모두 실패한 과도체제로 끝났다. 대중관리의 성공 사례는 60∼70년대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반전시위와 민권운동으로, 일본은 적군파의 폭력으로, 유럽은 신좌익과 테러리즘으로 체제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존슨」「드골」같은 거물지도자도 그 통에 몰락했다. 그러나 각국은 대중을 방관하거나 결탁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관심을 기울여 참여와 분배의 폭을 계속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70년대 말에 이르러 자본주의사회를 위협하던 소동은 모두 진정됐다.
민주화와 더불어 대중참여는 지금 막을 수 없는 우리사회의 대세다. 그들은 이제 객석의 관중이 아니다. 주권자로서 제자리, 자기 몫을 당당히 찾으려 한다. 이젠 우리도 권력과 분배에 대한 대중 참여의 폭을 질적·양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제도화하여 보장해야 한다. 대중의 욕구가 해결돼야 우리 사회는 보다 안정된 상태에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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