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노사분규…발단에서 타결까지|모든 요소갖춘 전형…분규해결의 본보기|협상파 타협ㆍ외세배제가 해결의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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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7일상오 극적인 타결을 본 대우조선사태는 최근 일련의 노사분규사태에 하나의 전기로 평가된다. 사태의 배경과 발단, 발생이후 진행과정과 수습, 수습이후의 문제점과 남긴교훈에 이르기까지 대우조선사태는 우리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노사문제 여러측면의 잡다한 요소들이 골고루 얽히고 설킨 「전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규사태에는 적자거대기업-불황-저임-불만누적-의사수렴기구부재-대화단절-위장취업-노조결성기도-해고-의식화학습l노조결성-충돌-파업-어용노조시비-노조교체-협상결렬「변수」발생-외세개입등이 난마처럼 얽혔다. 기업내 노동쟁의차원을 넘어 「대중정치투재망으로 빗나갈뻔 했던 분규는 그러나 막판 노조가 「외세를 거부하고 제걸음을 걷고 나섬으로써 성의로 최대한의 양보를 한 회사측과 결자해지의 결말을 짓고 노동운동의 변질에 결정적 쐐기를 박았다. 그 과정에는 역시 가톨릭과 야당의 중재가 있었고 결국 적자 대기업의 「양보」 는 어떤 형태로건 국민전체의 부담으로 전가될수밖에 없게됐다는 문제점도 남았다. ◇배경=대우조선사태발생과 장기화의 배경은 불황속에 누적된 근로자들의 불만과 회사에 대한 불신, 심각한 불황에다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회사측의 성의부족과 실기, 응급 구성된 노조의 운영미숙과 지도력부족, 그리고 외세의 개입이 복합된데 있다. 누적적자가 2천억원을 넘고 최근 조선불황까지 겹친 대우조선은 근로자들의 욕구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지난3월부터 시간급의 1백50%를 받는 잔업이 없어지면서 생활의 어러움이커 불만이 급격히 고조된상태였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3월21일 가톨릭노동천년회 (JOC) 회원을 중심한 50여근로자들이 회사내에「노조결성만이 해결의 길」이라는 유인물을 뿌리며 노조결성운동을 시작했고 회사측은 이중 7명을 경력증명서위조ㆍ근무태만등 이유로 해고했다. 이들은 곧 「대우조선해고자대책의」 를 구성, 종업원의식화학습ㆍ 동조자규합ㆍ복직투쟁등 회사 안팎에서 활동해왔다. ◇분규=「6ㆍ29」 이후 분규가 시작되며 결성된 노조는 해고근로자측과 일반근로자측이 50대50으로 집행부를 구성했으나 3일만에 주도권을 놓고 분갱이 일어 해고근로자측이 최초위원장 이상룡씨 (33) 를 어용으로 몰아 퇴진시켰다. 순수노동쟁의를 바라던 대부분 근로자들은 이에 『현장 근로자들 중에서 집행부를 뽑자』고 주강, 3개월간의 잠정노조를 결성하고 중장비 운전기사 양동생씨(38)를 위원장으로 하는 새집행부를 뽑았다. 양씨를 위원장으로 한 새집행부는 분규이후 회사측과 3차례 노사협의회와 4차례 실무협의등 7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그때마다 집행부에서 밀려난 해고근로자측의 반대, 강경투주장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사태는 격렬한 시위농성으로 이어지고 이석규씨 사망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씨사망후엔 국민운동본부등 재야 타개 단체가 대거 현장에 내려가 지원하면서 사실상 사태의 주도권은 재야로 넘어간 형국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사태악화ㆍ장기화에는 노조ㆍ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불신ㆍ피해의식에 겹쳐 사태를 너무 쉽게보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하는 식의 발상으로 대처해온 회사측의 자세도 있었다. ◇수습=재야의 본격개입으로 노동쟁의를 벗어나 사회ㆍ정치투쟁으로 변질될뻔했던 사태는 25일부터 수습의 계기를 잡게됐다. 5일 『대학생들이 들어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이씨의 빈소주변에 모였던 근로자들이 강ㆍ온으로 갈려 언쟁을 벌인데 이어 26일 노조집행부가 『유가족과 재야측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일해나가겠다』고 말한것은 그 신호탄이었다. 이 과정에는 중재역으로 나선 양권식신부등의 설득과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노조측은 외부세력개입에 대한 안팎의 비판여론ㆍ일부해고근로자를 제외한 대부분 근로자들이 장례문제와 임금인상등 문제를 애사적차원에서 자체해결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다는 상황인식에 따라 외세의 훈수와 간여를 뿌리치고 독자운신을 하기 시작했다. 노조측은 23일이후 각종대책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오던 국민운동본부측 이상수ㆍ노무현변호사의 회의장참석을 26일상오부터는 막았다. 이때부터 협상은 타결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고 현지출신 민주당 김봉조의원등의 거중조정을 통해 노사간 「노사의 악수」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교훈과 문제점=결국 외세는 일시적인 협상분위기 조성에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사태해결에 오히려 장애물임이 확실해졌다. 노사문제는 노사 쌍방이 어차피 「한솥밥식구」라는 공동이해의 기반위에서 대화와 양보로 풀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한번 인식시킴으로써 전국의 노사분규사태에 해결의 본보기가 됐다. 또 회사측엔 현재 전개되고 있는 노사분규사태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근로자관ㆍ기업관을 깨우치게하는 계기가되었으며 근로자들에게는 노사분규는 농성ㆍ극렬시위의 투쟁이 아니라 협상과 타협만이 해결의 길이며 보다 나은 복지성취의 수단임을 인식시킨 셈이다. 재야측은 분위기조성에는 큰 역할을 했으나 근로자들의 문제는 정치와 연관돼있지만 정치와는 또다른 차원임을 깨닫게한 한계인식의 기회가 된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대우조선 노사간합의와 분규수습은 대우조선이 실제로 막대한 빚더미위의 어려운 기업임을 생각할때 어떤 형태로든 국민들이 그 부담을 질수밖에 없다. 구조적 불황속에 설비과잉의 조선산업에 대한 정책적 결단도 어려운 과제다.【거제=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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